“사건 자체를 자극적으로 보도하면서 확인 안 된 내용, 수사와 관련 없는 부분까지 너무 많이 기사화했다. 특히 6살 아이에게 2차 피해를 주는 보도를 남발하는 걸 보면서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다. 언론으로서 지켜야 할 선을 넘은 것 같다.”
‘전 남편 살인 사건’을 처음부터 취재·보도해온 제주지역 기자들은 ‘육지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행태를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지나치게 자세한 범행 수법 묘사 △선정적인 제목과 내용 △무분별한 ‘단독’ 표기 △피해자 유족과 피의자 가족에 대한 2차 피해 보도 △취재 없이 쓰인 베껴쓰기·짜깁기 기사 등은 제주 기자들이 이번 사건을 다루는 중앙 언론을 보며 느낀 문제점이다.
관련 기사가 전국적으로 쏟아지고 있지만 이 사건이 그 어느 곳보다 제주에 준 충격은 상당하다. 범행 현장이 제주도일뿐 아니라 피의자인 고유정, 고씨의 현 남편, 살해된 전 남편 모두 이곳 출신이다. 더구나 피해자 유족, 피의자 가족, 고씨와 피해자 사이의 6살 난 아이까지 제주에 살고 있다.
초기부터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제주지역 기자들은 보다 신중한 태도로 사건을 보도했다. 남겨진 가족들이 받을 2차 피해를 우려해 잔인한 범행 수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고 일부러 아이의 존재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중앙 언론이 따라붙으면서 지역 기자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만들어졌던 보도 가이드라인이 무너졌다.
김찬년 제주MBC 기자는 “지역 기자들은 범행 현장에 아이가 있었다는 걸 알고서도 보도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중앙 언론사가 경찰수사 최종 브리핑 때 언급된 그 이야기에 단독을 달아 내보냈다”며 “이게 사건의 핵심은 아니지 않나. 나중에 아이가 받을 상처는 생각지도 않고 자극적인 소재로만 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고상현 제주CBS 기자도 같은 의견이었다. 고 기자는 “‘피해자인 전 남편이 성폭행하려 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고유정의 일방적인 주장을 제목으로 뽑고 단독까지 붙인 한 매체의 기사를 보고 있자니 화가 나더라”며 “조회수 장사를 위해 기본적인 취재도 없이 베껴쓰거나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곳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같은 기자로서 그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고경호 제주일보 기자는 이번 사안을 가장 열심히 취재하는 지역 기자들의 기사가 오히려 본질을 벗어난 보도에 묻히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수사에 핵심적인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아니라면, ‘단독’이 붙은 기사는 2차 피해를 부추기거나 사건 자체의 방향을 호도할 수 있다”며 “고유정 사건 보도가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라는 데 상당수 기자가 공감하고 있을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제어뿐 아니라 이런 문제를 막을 수 있는 취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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