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저널리즘 앞에 수식어가 자주 붙고 있다. 데이터 저널리즘, 알고리즘 저널리즘, 컴퓨터 저널리즘, 드론 저널리즘, 글래스 저널리즘, VR 저널리즘, 스트럭처 저널리즘, 인공지능 저널리즘 등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라 각종 저널리즘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또한 평화 저널리즘, 경제 저널리즘, 과학 저널리즘, 솔루션 저널리즘, 국제 저널리즘, 로컬 저널리즘, 탐사 저널리즘, 헬스 저널리즘, 팩트 체크 저널리즘 등 저널리즘 앞에 붙은 단어들은 각각 저널리즘의 형식과 내용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수식어의 저널리즘이 제시되고 있지만, 정작 ‘저널리즘’이 사라졌다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 가면 “대한민국에 저널리즘이 어디 있어”, “요새 기자들이 저널리즘이라는 단어조차 꺼내지 않아” 등의 얘기를 많이 듣는다. 회사의 수익, 수익에 기여하는지 불분명한 클릭이 저널리즘보다 우선한다는 자조의 소리다. 그 결과 ‘기레기’라는 단어가 보여주듯이 저널리즘이 위기를 넘어 사라졌다는 말로 이어진다. 저널리즘 앞에 붙는 다양한 수식어들은 사라진 저널리즘을 되살리기 위한 방법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면 사라지는 저널리즘을 다시 복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 맞는 내용들이고 의미 있다. 문제는 해법이 너무 많이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뭐부터 해야 할지 한 발짝 떨어져 보고 있는 나도 헷갈린다.
저널리즘 앞에 수식어를 그만 붙였으면 한다. 대학에서는 수식어가 붙지 않은 저널리즘 과목마저 사라지고 있다. 저널리즘이 위기를 넘어 사라지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그냥 저널리즘이다. 취재와 보도의 방식은 시대에 따라 항상 변한다. 변화하는 방식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다 적응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 공동체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라는 목적이다. 저널리즘이 사라지는 것은 그 목적에 따르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려울 때 해법은 간단할수록 좋다. 수식어 없는 그냥 저널리즘이 해법일 수 있다. 민주주의 공동체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권력을 감시하며, 사회 구성원들이 듣기 불편해 하더라도 꼭 알아야 할 사안들을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취재하여 보도하면 된다. 이를 위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편한 방식을 선택하면 될 일이다. 저널리즘 앞에 붙는 다양한 수식어들도 결국 저널리즘으로 수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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