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결말을 알고보든, 모르고보든 영화에 대한 흥미나 평가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책이나 영화가 내 몸을 통과하며 남기는 흔적은 타인의 평가와 무관하게 온전히 ‘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11년 역사를 갈무리하는 <어벤저스:엔드게임>을 둘러싼 스포일러라면 상황이 좀 달라진다. 스포일러를 당하지 않으려 애쓰고, 조심하고, 안달하며 ‘함께’ 부산을 떠는 묘미야말로 영화 밖에서 영화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스포 당할 수도 있으니까 극장에서 화장실 갈 때도 꼭 이어폰 끼고 가” 같은 친구의 조언이나 “스포 말한 애인과 헤어지려 한다”라는 내용의 글에 달린 수백 개의 댓글이야말로 이 시리즈를 완성하는 하나의 ‘풍경’인 셈이다.
나 역시 개봉 첫 주 주말 새벽 1시40분에 피곤한 몸을 극장에 구겨 넣었다. 그 시간에도 빈자리가 드물었다. 영화에 대한 기대보다는 ‘스포일러 당하지 않고 영화 보기’라는 ‘놀이’에 참여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물론 영화를 함께 본 짝꿍은 달랐다. 그는 마블 시리즈의 11년 역사와 자신이 지나온 11년 세월을 겹쳐 보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한 시절이 저문다는 걸 절절하게 아쉬워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마블 시리즈가 개봉할 때마다 반복되는 스크린독점에 분노하며 외롭게 ‘셀프 불매’를 하던 내가 이 단순한 영웅물을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된 것도 일정 부분 짝꿍 덕분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 마블 시리즈를 사랑하게 될 게 분명하다. 이번 영화에서 마블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백인에서 흑인으로 권력 이동을 예고했다. “능력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지난 3월 개봉한 MCU 최초 여성 단독 주연 영화 <캡틴 마블>의 대사다) 이 새로운 영웅들이 특히 아이와 청소년들에게 미칠 영향을 상상하면 정말 짜릿하다.
자, 이렇게 결국 스포일러를 이야기하고 말았다. 스포일러 없이 영화 이야기하기가 이렇게 힘들다. 영화를 아직 안 본 관객에게 팁을 하나 주자면 상영시간은 181분이고 당연히 인터미션은 없다. 제발 화장실을 미리 다녀와서 ‘관크’(관람 방해)의 주인공이 되지 말자. 정말 못 참겠다면 ‘TOKYO’ 자막이 뜰 때가 기회다. 이 부분은 정말이지 영화에 굳이 필요 없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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