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윤리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보편적인 윤리의식이 있는가 하면, 취재와 보도를 하면서 지켜야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윤리가 있다. 둘은 분리될 수도 있고, 때로는 하나일 수도 있다. 기자들이 취재나 보도를 하면서 금품을 받아선 안 되고, ‘취재 편의’라는 명목으로 합당하지 않은 대우를 요구하거나 받아서도 안 된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보도를 해서도 안 된다. 사실이 아닌 내용을 보도해서도 안 되고, 특정 사실을 부풀리거나 왜곡해서도 안 된다. 이론적으로 기자들이라면 이쯤은 안다.
보도와 직접 관련돼 있지 않은 사적인 영역에서라면? 사적인 영역에서 기자들은 시민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것보다 더 높은 윤리의식을 갖고 있어야 할까? 기자가 보도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증오심과 혐오감을 부추기면 안 된다. 그렇다면 기자들은 개인으로서도 그런 발언을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성폭행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기자 동료 혹은 기자 아닌 친구들에게 전달하고, 성범죄 동영상을 ‘사적으로’ ‘비공개로’ 끼리끼리 돌려보는 행위는?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혐오발언이나 사실이 아닌 일을 퍼뜨려 문제가 된 것은 한두 건이 아니다. 김영란법을 계기로 기자들의 행태가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번엔 단톡방 사건이 터졌다. 불법 동영상을 기자들끼리 돌려보다가 걸렸다. 이 사건은 성범죄에 대한 기자들의 인식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보였다. 언론이 지탄해온 짓들을 언론인들이 해왔다는 걸 보여줬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은 권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언론의 권리와 기자들의 책무라는 두 축으로 구성돼 있다. 언론자유 수호, 공정보도, 품위유지, 정당한 정보수집, 올바른 정보사용, 사생활 보호, 취재원 보호, 오보의 정정, 갈등·차별 조장 금지, 광고·판매활동의 제한. 하지만 지금 시민들 눈에 비치는 기자들 모습은 ‘더 높은 윤리의 소유자’이기는커녕 범죄자에 가깝다. 헌법으로 보호받는 ‘언론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윤리의식은 없다.
“기자라면 이러저러해야지”라고 말하면 아마도 상당수의 후배 기자들은 “예전엔 더 나쁘지 않았느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기자들이 기자 아닌 사람들보다 더 윤리적이라는 보장도 없고, 그렇게 되라고 강요할 명분이나 명쾌한 기준도 없다.
그러나 기자의 윤리를 떠나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도 해서는 안 될 짓들을 해서야.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불법행위이고 범죄다. ‘수사 촉구’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온 것을 보니 창피하고 화가 치민다. 기자와 윤리의 당연하면서도 복잡한 관계를 고민하는 것조차 아깝게 느껴지지만, 그럴수록 고삐를 죄지 않으면 기자가 사회의 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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