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앞 불길, 20층 높이 방불... 생존본능 절감하며 특보 돌입"
[강원 기자들의 산불 재난 취재기] 김형호 MBC 강원영동 기자
강풍, 불길한 예감이 산불 현실로 산불이 나던 그 날, 나는 고성 통일전망대 DMZ 둘레길 관련 리포트를 제작했다. 오후에는 강풍피해를 취재해 관련내용을 강릉 취재기자에게 전달했다. 이런 강풍에 불이라도 나면 큰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퇴근했다. 금요일 저녁은 주말부부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라, 하루 전인 목요일은 보통 저녁식사 약속이 있다. 칼퇴근을 못하다 보니 그날은 30분 늦게 식당에 도착했다. 후래(後來) 3배의 첫 잔을 마시고 둘째 잔을 받던 순간. 함께 있던 경찰 정보관의 표정이 굳어졌다. 미시령 부근에서 산불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오후에 인제에서 산불이 발생한 터라 여기도 산불이 나면 큰일이었다. 인제쪽 미시령까지 산불이 왔나하고 다시 술잔을 들었는데, 속초 미시령 터널 부근이란다. 역대급 산불이 되겠구나하는 불길한 예감속에 MBC 속초지사 사무실로 향했다.
19층에서 본 그날, 산불
20층 건물의 19층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밖을 보니 영랑호 너머 고성군이 불타고 있었다. 산불이 발생한 지 1시간 반쯤 지났을 때였다. 미시령에서 난 산불이 벌써 여기까지 왔다니 이거 정말 재난 재앙이겠다는 생각에 강릉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밤 10시쯤 취재 2개팀이 속초로 지원을 나왔고, 편성PD 선배까지 합류했다. 서울에서는 밤 11시부터 산불특보를 할 테니 LTE 생중계를 준비하란다. 영랑호 너머 불길은 더 거셌다. 산불발생과 피해상황, 주민 대피를 담은 기사를 서울로 송고하고, 산불의 이동경로와 피해상황 등을 파악했다. 그사이 주민들은 고성과 속초의 학교와 체육관 등으로 대피를 하고 있었다. 이때까지도 난 19층에서 보이는 산불 모습 이외에는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었다. 영상취재 카메라 기자만 화재현장을 다니며 영랑교 위에 불타는 버스와 속초고등학교, 영동극동방송국의 화재 순간을 기록했다. 카메라 기자는 촬영화면을 서울로 보내기 위해 틈틈이 속초지사로 들어왔다 다시 현장으로 나갔다. 밤 11시부터 MBC는 산불특보를 했고, 후배 취재기자가 LTE 참여를 전담했다. 다른 취재팀은 속초 시내 곳곳의 산불현장을 취재했다. 19층 사무실에 앉아 있던 나는 서울과 강릉 보도국에서 계속 전화를 받았다. 짬을 내서, MBC강원영동의 라디오 재난방송에도 전화로 참여했다.
산불현장에서 나란 존재는?
휴대전화에는 몇 분 간격으로 계속 주민대피 재난 문자가 날아왔다. 대피령이 내려진 지역에는 속초시 영랑동도 포함됐다. MBC 속초지사가 있는 곳이다. 이 일대 대피령은 밤 10시 반 정도부터 내려졌지만, 그때까지는 버틸 만했다. 밤 11시가 되면서 상황은 심각해졌다. 건물 관리사무소에서는 사이렌소리와 함께 대피하라는 방송을 했고 건물 안은 연기가 자욱했다. 불은 속초지사에서 200 미터가량 떨어져 있는 산까지 다가왔다. 이때부터 산불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었다. 건물 전깃불은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고, 관리사무소는 정전에 대비해 엘리베이터 작동을 중단한다고 방송했다. 자정쯤, 속초지사 앞산의 불길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20층 건물 높이 만큼 치솟았다. 방송이고 뭐고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존본능이 작동했다. 마스크를 쓰고 탈출을 시도하려는 순간, 서울 특보뉴스에 전화로 참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미치고 펄쩍 뛰는 순간이었다. 최대한 침착하게 뉴스참여를 하고 영상취재기자, 운전기사와 함께 비상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이때가 자정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강릉 옥계에도 산불이 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취재팀 하나가 강릉 옥계로 갔고, 불길이 동해까지 번진다는 소식이 들렸다. 속초항으로 대피했던 나는 새벽 2시쯤 속초지사 사무실로 복귀했다. 이때부터 산불은 다시 취재대상이었고, 나는 속초지사 주재기자로서 지금도 산불피해 취재를 이어가고 있다. 지역방송국에서 특히, 지사에 근무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먼저 취재하고 계속 주재하며 끝까지 남아야 하는 게 숙명이다. 이번 산불은 지역방송국과 지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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