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보도태도가 원칙 없이 시류에 따라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람 따라 달라지는 총리 지명자에 대한 검증 뿐 아니라 재벌의 정치참여 문제, 신당 창당 문제 등에 있어서도 ‘정주영’과 ‘정몽준’이 다르고, ‘새정치국민회의’의 창당과 최근 민주당의 ‘신당’ 창당에 차이가 있는 등 상황에 따라 다른 잣대를 대고 있다는 것이다.
재벌 정치참여
지난 92년 1월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대선을 염두하고 국민당을 창당했을 때 언론은 일제히 ‘재벌당’ ‘현대당’이라는 비판과 함께 “재벌의 정치참여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는 정경분리의 원칙이 추구돼야”(동아 92.1.4), “돈이면 다할 수 있다는 발상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중앙 92.1.4), “재벌은 견제의 대상이지 정치의 주역이 돼서는 안된다”(조선 92.1.5)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같은 해 5월 정 회장이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을 때도 언론은 “한국 최대의 재벌이 정권을 장악했을 때의 역기능에 대한 우려”(동아 92.5.16), “정치는 이 시장에서 한탕하고 저 프로젝트에서 한건하는 장사와는 다르다”(중앙 92.5.16)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그러나 언론은 정주영 회장의 아들이자 현재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의 대선 출마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정 의원의 경우 4선 국회의원으로 이미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서의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정치인으로서의 능력 검증은 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따라서 그의 대선 출마가 갖는 문제와 영향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정 의원의 지지율 변동과 신당 참여 여부에만 관심을 쏟을 뿐 본격적인 검증작업을 벌이지 않고 있다.
국민회의·신당
최근 정치권의 최대 이슈가 되고 있는 신당 창당과 관련해서도 지난 95년 새정치국민회의가 창당됐을 때 보였던 혹독한 비판은 언론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92년 대선에서 낙선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DJ가 95년 7월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 총재가 됐을 때 언론은 ‘또 다른 공작정치가 아니냐는 의구심’(대한매일 95.7.31), ‘새로운 정당의 탄생이 아니라 민주당의 분당’(국민 95.8.11)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최근민주당의 신당 창당 보도는 민주당의 내분과 정치인들의 행보에만 관심이 집중됐을 뿐 경선 불복과 무원칙한 이합집산 등 본격적인 문제제기는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몇몇 언론이 ‘명분 없는 신당추진의 위험성’(문화), ‘신당과 꼼수정치’(중앙), ‘신장개업은 신당일 수 없다’(조선)며 사설을 게재하기도 했으나 이 또한 민주당의 내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대부분의 기사는 정치인들의 ‘입’만 쫓고 있다는 지적이다.
총리검증
원칙없는 언론의 보도태도는 장대환 총리 지명자에 대한 검증보도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장상 전 총리 지명자에 보였던 혹독한 검증과는 달리 언론은 매경 사장 출신인 장대환 지명자에 대해서는 뒤늦게야 솜방망이 정도를 가했다는 지적이다.
장상씨의 경우 언론은 임명 직후부터 연일 아들 국적 문제, 공동소유 임야 투기 논란 등 비리의혹을 대대적으로 파헤쳐 총리 인준이 부결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장대환씨에 대해서는 부동산 투기, 특혜 대출 의혹, 자녀 위장전입 논란 등 더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검증보다는 드러난 문제를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태도는 보도량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장대환씨와 장상씨가 각각 총리서리로 임명된 직후 8일간의 기사를 KINDS로 검색한 결과 ‘장상&논란’은 268건, ‘장대환&논란’은 48건으로 5배 이상 차이가 났던 것이다.(본지 8월 21일자 참조)
이같은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김영호 전 세계일보 편집국장은 “정몽준 의원의 경우 현대를 등에 업고 있다는 점에서 정주영씨와 같고, 장상씨와 장대환씨도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같은데도 언론보도는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박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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