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의 강원일보는, 74년 된 ‘뿌리 깊은 나무’와 같다. 이 나무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 소명이 우리에게 있다.”
지난 20일 밤 9시께 강원 춘천시 중앙로 강원일보 사옥 5층 대강당. 70여명이 참석한 강원일보 노동조합 창립총회에서 류재일 강원일보 노조위원장은 “위기일수록 사용자측의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노조를 통해 노사가 지혜와 역량을 모으는 방안을 찾고자 한다”는 노조 창립의 변을 밝히며 이 같이 말했다.
강원일보노조 ‘조합원’들 얼굴에선 흥분과 감격스러움이 묻어났다. 이날 노조규약안 찬반투표엔 66명이 투표해 만장일치로, 위원장과 집행부 선출엔 65명 중 위원장 63명·집행부 64명이 찬성해 통과됐다. 100여명이 노조가입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원기자협회 산하 모든 지회가 지지 의사를 밝혔고, 회사 출신 타사 선·후배들도 커피 등을 보내 응원의 뜻을 전했다.
총회에 참석한 정익기 강원일보 부국장(강릉 주재기자)은 “가입원서를 쓰며 감회가 남달랐다. 1992년 노조 사태로 인원이 빠져나가며 대거 입사했던 게 생각난다”며 “후배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오늘을 초심으로 소통과 상식이 통하는 회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하늘 정치부 기자는 “2011년 입사해 8년 동안 개인 책임인지 회사 구조 문제인지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하는지 답답한 때가 많았다”며 “선배들이 큰 용기를 내줘서 회사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더 좋은 노조를 만들기 위해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했다.
2007년부터 사장직을 맡아온 이희종 대표이사는 구성원들이 노조 발족 대자보를 붙인 지 이틀만인 지난 20일 사의의사를 밝히고 22일 주주총회에서 사임했다. 이날 박진오 전무이사가 제13대 새 대표이사로 선임됐고, 강원일보사는 25일 이·취임식을 진행했다.
앞선 대자보에서 구성원들은 ‘제왕적 경영시스템에 따라 소통이 메마른 조직현실’, ‘경영진에 대한 신뢰붕괴’, ‘비전 제시의 부재’를 거론하며 경영진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또 ‘언론 공공성 강화’, ‘구성원 신뢰회복을 위한 투명경영 정착’,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1945년 창간 이래 강원일보에선 노조가 제대로 활동한 적이 없었다. 1992년 노조 설립 당시 노사 갈등은 구성원 이탈과 분사 사태로 종결되며 노조가 자리잡는 계기가 되지 못했다. 이후 27년간 강원일보는 물론 강원도민일보까지, 강원도 지역일간지 양사엔 노조가 없었다.
오석기 문화부장은 “회사가 작아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편집국서 기사와 동떨어진, 사업 관련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자괴감을 느껴왔다. 얘기할 수 있는 길이 마련돼 기쁘게 생각한다. 타국 선·후배들도 부당한 처우를 받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했다.
최승영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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