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는 ‘유효 수요’의 부족이란 개념으로 공황을 진단하고, 수요 진작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1971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이제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라고 밝힐 정도로 케인스 이론은 당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자본주의 자체를 파괴하기보다 수정하는 길을 택해 마르크스와는 차별화된 노선을 취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를 하나의 조화롭고 안정적인 시스템으로 보는 ‘일반 균형이론’을 버리고 시장 경제를 관통하는 대안적 시도를 한 점에선 마르크스와 궤를 같이한다는 일부 평가도 있다.
경제위기 원인을 수요에서 찾은 케인스와 달리 슘페터는 경제의 공급 측면에 주목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원동력은 기술혁신에 있다고 보고, 동태적 관점에서 경제발전 주도자는 소비자가 아니라 기존 것을 파괴하고 새 것을 창조하는 기업가(entrepreneur)라고 평가했다. 그 역시 마르크스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지만 비판적 자세를 견지했다. 마르크스의 착취론과 궁핍화론을 배척하고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한 혁신이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추동력이라고 설파했다.
경제학계의 두 거두인 케인스와 슘페터가 한국에서 조우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 성장’을 경제정책의 두 바퀴로 삼으면서다.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은 수요를 자극하는 처방이란 점에서 케인스식 수정 자본주의에 맥이 닿아 있다. 공급 분야의 자극에 초점을 둔 혁신 성장은 슘페터의 전매특허다. 복지 지출을 통해 가계 소득을 높여 대중의 구매력을 향상시킨다는 케인스식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한국경제의 구조와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슘페터식 혁신 정책과 의기투합해 한국에서 새로운 실험에 들어간 셈이다.
두 이론의 궁합이 검증된 바는 없다. 하지만 한국 경제에는 필연적인 정책 조합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의 어려움은 경기 순환상의 일시적 침체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만큼 총수요를 자극하는 케인스뿐 아니라 공급 분야의 혁신인 슘페터식 처방이 병행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J노믹스의 두 바퀴지만 지금까지는 케인스가 슘페터보다 앞서 달렸다. 정부가 고용과 복지에 수십조 원을 쏟아 붓는 처방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엔 유효 수요를 자극하는 케인스식 처방이 슘페터식 혁신보다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급증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부른다. 정책에는 파열음이 일고, 약효는 단기에 그치고 있다. 문 정부 2기 경제팀에선 4차 산업혁명시대에 장기적인 성장을 담보하는 슘페터의 약진을 기대해 본다.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부장·신문방송학 박사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