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서, 각종 언론단체의 책임자와 여러 대학의 초빙교수를 지내면서 각종 신문과 시사 잡지, 언론단체 회보 등에 실렸던 글을 책으로 정리한 것으로 1980년대 초반부터 2018년까지 쓴 글을 차곡차곡 모은 81편이 담겼다. 시대적으로 오래된 글이 많아 지금의 상황과 동떨어진 얘깃거리가 아닌가할 수도 있지만 기우에 불과하다.
그는 서문에서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당시의 상황이나 지금의 양상이 크게 다른 것이 아니라 물레바퀴 돌듯이 같은 상황이 판박이처럼 재연되고 있어 크게 실망하지 않아도 좋을 듯 하다”고 밝히고 있다.
책 몇 대목을 소개하면 그의 말뜻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기자는 어디까지나 기자다. 또 기자는 계급도 아니다. 기자가 지게꾼을 만나서 취재할 때에는 지게꾼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고, 대통령과 만나서 취재할 때에는 대통령과 동일한 선상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자 뒤에 독자와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무관의 제왕. 1997. 7.1)
“기자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봉급생활자의 모습으로 정착된 것이 오늘이라고 하겠다. 기자가 별난 직업이 아닌 이상 생활인의 평범한 월급쟁이로 정착하는 것도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기자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선후배 간의 소통이 활발하고, 생기가 발랄하고, 뭔가 떠들썩한 분위기가 가득하면 좋을 것이다. 기자 사회는 심장이 고동치듯 항상 움직이고 있어야만 한다.” (기자! 그때와 지금. 1982. 3.1)
“경쟁에 이기려다보니까 같은 사건 기사도 뭔가 다르게 보이도록 꾸며야하고 기자들이 독자에게 무언가 색다른 것을 보여주려고 재주를 부리는 것이다.” (가짜뉴스 그 까닭. 1981.6.3.)
“영국의 명문사립학교인 이튼스쿨, 정확하게 말해서 이튼칼리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1440년 국왕 헨리6세가 이튼지역의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설립한 6년제 남자고등학교다. (중략) 이튼스쿨 교정의 뒷마당에는 수많은 묘비가 있다. 전사한 학생들의 공동묘지이다. 운동장에 무덤을 만들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고귀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기리고 있다.” (‘내로 남불’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2016.8.4)
“과거의 경험이라는 것은 이미 구문이 되어 버린 ‘백 투 더 퓨처’에 관한 것들이 때문에 혼자서 웃어가며 얘기해도 학생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한다. (중략) 나는 적어도 인터넷 세대, 나 홀로 세대로 일컬어지는 대학생들과 호흡을 같이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무슨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2007. 7.1)
이형균은 1965년 경향신문 수습기자로 시작해 정치부장, 워싱턴특파원(문화방송 특파원겸임), 편집국장, 논설위원, 출판이사(대우)를 지낸 뒤 1992년 경향신문을 떠나 한국프레스센터 전무, 한국신문방송인클럽 회장, 한국 PR협회 회장, 서울대 관악언론인회 회장, KBS 시청자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이 책이 독자 여러분에게 단순한 칼럼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족적을 살펴보고 오늘의 편리함을 깨닫게 되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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