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백래시(Backlash)’인지는 의문스럽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그 역작용으로 거센 반발이 일어나는 걸 백래시라고 한다. 백래시가 일어날만큼 한국에 난민들이 많던가? 난민들이 일정한 크기 이상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며 이 사회에서 목소리를 냈던가? 이방인에 대한 거부감, 특정 종교에 대한 다소간 조직적인 반발,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 사람에 대한 선입견, 인종적 종교적 혐오감이 아닌가? 도이체벨레는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힘들게 벌어들인 부(hard-earned wealth)와 건강보험, 기타 서비스의 이점을 노리려는 경제적인 이민자들이라며 (예멘인들을) 비난한다”고 전했다. 그 말이 맞다. 종교적 문화적 거부감보다는, 결국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돈을 써야할까봐 아까워하는 마음인 거다.
백래시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표현은 ‘가짜난민’이다. 여러 나라의 난민들을 만나봤고, 적어도 평균적인 한국인들보다는 난민을 다룬 자료를 많이 보아온 나에게 이 표현은 참 낯설다. 유럽의 우파들은 난민들이 취업기회 많고 사회복지가 탄탄한 나라들을 골라간다며 ‘망명지 쇼핑’이라고 비아냥거린다. 고난을 피해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으려는 이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이데올로기 공세다. 거기에 난민의 현실은 담겨 있지 않다. 1990년대 영국에서 주류 미디어들이 대놓고 이런 표현을 쓰면서 이 말이 널리 퍼졌다. 카디프대학 저널리즘학자 케리 무어는 “신자유주의자들의 경제담론이 사회와 문화에 스며들고 언론들이 이를 보도하면서 망명지 쇼핑은 일반적인 용어가 돼버렸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가짜난민은 난민들의 특정 행태를 과장해 비꼬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가짜뉴스’에게서 파생했을 이 표현은 유독 한국에서 많이 쓰인다. 구글에서 페이크 레퓨지스에 대한 최근의 뉴스를 검색하면 호주의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한국발 뉴스다.
가짜난민을 질타하는 국내언론 보도들은 불법 난민신청 브로커들이 붙잡혔다는 기사에서 출발한다. 거기에 가짜난민이라는 제목을 붙여 독자들의 반감을 자극한다. 소셜미디어나 웹의 글들은 비행기를 타고 왔고 휴대폰이 있다는 이유로 예멘인들에게 가짜 딱지를 붙인다. 난민들 몇 명 받아주지도 않으면서 ‘가짜난민을 가려낼 법안’을 발의하는 여당 의원, 손팻말 들고 거리로 나서고 댓글 쓰나미를 일으키는 사람들, 난민 혐오에 기댄 기사들을 쏟아내는 언론. 가짜난민이라는 말이 비춰주는 것은 난민의 실상이 아닌 한국의 민낯이다.
구정은 경향신문 정책사회부장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