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조치·보상소홀 등 구조적 접근 외면
언론이 최근 주한미군 관련 사건·사고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달 13일 경기도 양주군에서 미군 장갑차에 치어 여중생 2명이 숨진 사고와 이에 대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을 1단 처리하거나 보도하지 않았다. 또 미군부대 고압선에 감전돼 1년 가까이 투병하다가 지난 7일 숨을 거둔 전동록씨 관련 보도도 소홀했다.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고는 사건 발생 일이 6·13 지방선거일과 겹쳐 이튿날 지면에 최초 발생 기사가 크게 다뤄지기 어려웠다고 하지만 국민일보와 조선일보의 경우는 아예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지난 20일자 신문에 미 2사단 공병대가 비공개로 사망 여중생에 대한 추모행사를 가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보도했다.
이번 사건의 경우 미군측은 우발적 사고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훈련 사실을 사전 통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동로에 안내병을 배치토록 한 미군의 훈련 규정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여부 등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언론의 관심사가 될만한 사안이었다. 또한 사고발생 당시 운전병과 장갑차 차장의 통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 역시 석연치 않아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럼에도 미군측은 민간인 접근을 통제한 가운데 현장조사를 마무리하고는 “과실은 없었다”며 사과는 커녕 고압적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미군측은 또 유족에게 각각 100만원을 위로금으로 지급했을 뿐 피해보장 문제에 대해서도 이렇다할 입장 표명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 미군 부대 고압선에 감전 사고를 당한 전동록 씨의 경우도 미군측은 주둔군 지위협정(SOFA)에 따라 피해보상의 책임이 없다며 60만원을 위로금으로 지급, 반발을 샀다.
이런 사정과 관련해 사망 여중생 유족들과 범국민대책위원회가 미군 관계자 6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고소하고 잇따라 항의집회를 갖는 등 거세게 반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겨레, MBC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단신 기사로 처리하거나 수습책 마련에 비중을 둔 태도를 보였다. 또 지난달 26일 미 2사단 정문 앞에서 열린 범국민대책위원회 주최의 규탄대회를 취재 중이던 인터넷 언론 사진기자 2명이 미군측에 강제 연행 당한 사실도 대부분 언론은 단신 처리하거나 외면했다.
한 신문사 의정부시 출입기자는“일부 기자들은 ‘관련 기사를 써도 지면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며 한탄하기도 한다”며 “기사를 출고해도 데스크 과정에서 빠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부분 언론이 이번 사건에 대해선 의정부 주재기자들이 담당토록 할 뿐 별도의 취재 인원을 파견하지 않았다.
언론은 이에 앞서 지난해 7월 미군부대 고압선에 감전돼 투명생활을 해오다 지난 7일 끝내 숨을 거둔 전동록 씨 사건에 대해서도 장례식 당일 노제 문제를 놓고 경찰과 마찰을 빚은 것과 당시 월드컵 한-미전을 둘러싼 반미 감정을 우려하는 차원에서 보도했을 뿐이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지난달 27일 성명을 내고 “언론의 철저한 외면이 월드컵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미군에 의한 각종 범죄와 사건·사고를 외면하던 평소의 그 관행 때문인지 단언하기 어려우나 언론의 직무유기는 용인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사과 한 마디 없는 미군의 무성의한 태도와 정부 당국의 무관심, 그리고 언론의 외면이 3박자를 이뤄 무참히 깔려 죽은 여중생들의 죽음을 억울하게 몰아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김동원 기자
[email protected]
김동원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