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보다 박종철 더 기억했으면…"
[인터뷰] 드라마 '박종철' 만든 MBC 이정표PD
“신문이요, 신문. 대학생이 조사를 받다 죽었습니다.”
한여름 햇살이 따갑던 지난 17일 광화문 사거리에서는 겨울 코트에 털모자를 쓴 신문배달원들이 박종철 군의 고문치사사건이 실린 87년 1월 15일자 중앙일보를 돌리는 장면이 한창 촬영 중이었다. 오는 24일 방영될 MBC 기획특집드라마 ‘박종철’(밤 9시55분)을 연출한 이정표PD를 광화문 촬영현장에서 만났다.
“올해는 87년 6월 항쟁이 일어난 지 15주년 되는 해이니 만큼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다뤄보기로 했습니다. 평범한 대학생이 수배 중이었던 선배를 하룻밤 재워줬다는 이유만으로 끌려가 고문 끝에 죽음에 이른 이 사건은 우연하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5공 말기의 강압수사가 빚은 정치적 사건이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PD는 ‘박종철’을 드라마로 제작하기로 하고 지난 1월부터 자료조사에 들어갔다. 박종철의 친구들과 가족, 당시 담당검사, 부검의 등 관련 인물들을 만나고, 신문기사와 관련 책, 당시의 공판기록 등을 찾아봤다. 역사적인 사건이고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살아있는 만큼 무엇보다 사실에 기초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의 성격에 맞게 사실을 재구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연대기적으로 접근할 것이냐, 픽션을 가미할 것이냐 고민이 많았습니다. 대본을 10번 이상 고쳐가며, 주변인물에 대해서는 철저히 고증에 충실하면서도, 드라마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 약간의 픽션도 가미했죠. 박종철을 회상하는 친구의 나레이션이 들어가고, 여자친구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겨울에 일어난 사건을 한 여름에 촬영하는 데 따른 제약도 있었고, 페퍼포그 차량이나 경찰청사 촬영 등 장소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촬영에 애를 먹는 등 ‘박종철’을 드라마로 만드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교내 드라마 촬영을 불허해온 서울대가 흔쾌히 촬영을 허가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이 PD는 박종철 역에 실제 서울대생을 캐스팅하기 위해 제작진과 서울대 교정을 돌아다니다 2학년에 재학중인 최동성씨를 발굴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PD는 “할 얘기가 더 있는데 TV가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에 다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직접 고문을 한 당사자가 있겠지만 그 사람은 하수인일 수도 있죠. 심증은 있지만 그렇다고 드라마에서 쉽게 단죄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민감한 문제니까요.” 이외에도 당시 엄청나게 발달해있던 고문기술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없는 것이나, 해부장면을 모형으로 만들어 촬영하고도, 너무 잔인한 것 같아 극히 일부만 내보내야 하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라고 한다.
이 PD는 “박종철은 당시 시대 상황이 낳은 가장 큰 희생양이자 누구보다 순수하고 원칙적인 젊은이였다”며 “드라마보다 박종철이라는 인물이 부각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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