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곤지암' 흥행의 비밀

[스페셜리스트 | 문화] 박돈규 조선일보 주말뉴스부 차장

박돈규 조선일보 주말뉴스부 차장.

▲박돈규 조선일보 주말뉴스부 차장.

영화 ‘곤지암’이 개봉 11일째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예상을 뒤엎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어 원’마저 눌렀다. ‘레디 플레이어 원’ 제작비는 무려 1억7500만 달러(약 1850억원). ‘곤지암’은 11억원짜리 저예산 영화다.


국산 공포 영화로는 2003년 ‘장화, 홍련’(314만명)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이다. ‘곤지암’은 ‘장화, 홍련’처럼 여름 성수기 개봉작이 아니라 3월 말~4월 초 비수기에 거둔 흥행이라 더 놀랍다. 영화 시장에서 한국 공포물은 상영관을 100개 확보하기도 어려울 만큼 부진이 길었고 기대치가 낮은 상황이었다. ‘곤지암’은 어떻게 이 복잡한 허들을 뛰어넘었을까.


흥행 동아줄은 교복 관객이다. ‘곤지암’ 예매자는 다른 영화에 비해 10대 비율이 매우 높은데 ‘인터넷 1인 방송’ 포맷이 그들의 호응을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영화시장 분석가 김형호씨의 분석이다. 그는 “‘곤지암’은 비수기에 나온 중저가 상품이라 할 수 있지만 마케팅에 비교적 많은 돈을 썼다”며 “국산 공포 영화도 핵심 관객층인 10대의 시험 기간을 피하고 커뮤니케이션이 뒷받침될 경우 가성비 높은 흥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곤지암’은 세계 7대 소름 끼치는 장소로 꼽히는 곤지암 정신병원에서 펼쳐진다. 1979년 환자 42명이 집단 자살하고 병원장이 실종된 뒤 버려져 있던 곳이다. 괴담으로 둘러싸인 공포 체험의 성지랄까. 얼굴과 몸에 생방송 액션캠을 부착하고 이 폐허로 들어간 체험단 7명에게 섬뜩한 일들이 벌어진다.


공포라는 이름의 산이 있다면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정범식 감독은 유튜브 방송처럼 서사나 내러티브 구조를 삭제했다. “요즘 세대는 간단히 스마트폰으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열광적으로 소비한다”는 그의 말마따나 ‘체험 공포’ 콘셉트를 택한 것이다. 배우의 시선과 얼굴 클로즈업을 교차해 보여주기, 실제 공간처럼 황량한 미술, 최대한 배제한 음악으로 공포의 표면적을 넓혔다.


10대는 괴담에 잘 휩쓸린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이 영화의 흥행은 10~20대 관객이 이끌었지만 특히 10대 예매율이 여느 영화보다 5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상영관에서는 멈추기 전엔 탈출할 수 없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비명이 때로는 무섭게 때론 신나게 터져 나왔다. 관람 인증샷을 SNS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불안, 서스펜스, 충격. 공포 영화는 이런 감정들을 패거리처럼 거느린다.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없게 긴장을 쌓아나가면서 관객을 집어삼킨다. 관객은 영화가 끝나야 비로소 안도한다.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말했다. “악몽에서 깨어날 때 맛보는 기쁨을 관객이 경험하게 하라”고.


사람들은 공포를 영화관의 ‘여름 창업’ 아이템쯤으로 생각했다. ‘곤지암’이 그 편견을 깼다. 10대에게 새로운 놀이 문화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 이 질문이 승패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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