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투표독려 ‘사후약방문’
정당 명부제 정치적 의미 외면
6·13 지방선거가 끝났다. 언론은 50%에 못 미치는 투표율 저하를 우려했다. 하지만 역대 최저라는 투표율 기록에 언론은 책임이 없을까. 지방선거를 지역 살림꾼을 뽑는 지역주민의 참정권 행사라기보다는 ‘대선 전초전’이라는 정치권 논리를 뒤따르기 급급하더니 월드컵이 열리자 지방선거 보도를 뒷전으로 미룬 게 바로 언론이었다. 또 선거전이 본격화하자 지방선거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 지방선거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 확산에 일조하기도 했다. 선거일이 임박해 ‘투표하고 축구보자’며 선거 참여를 독려했지만 뒤늦은 처방이란 지적을 샀다. 6·13 지방선거와 관련, 그간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정리했다.
지면배치·기사량=월드컵이 시작되자 이와 함께 지방선거 보도 모두 소홀히 할 수 없는 국가 대사임에도 불구하고 기사의 지면 배치나 양적인 면에서 최소한의 균형마저 이뤄지지 않았다. 신문의 경우 한국이나 주요 우승예상국 대표팀의 경기결과는 거의 매일 1면 머릿기사를 장식하고 관련 기사도 3개면부터 많게는 9개 면에 걸쳐 줄을 이은 반면 지방선거 보도는 정치면 일부나 지방면에 국한됐다. 방송 뉴스의 경우엔 사정이 더 안 좋아 한국전 경기가 치러진 날엔 전체 50여개 꼭지 대부분이 월드컵 관련 기사였고 지방선거 기사는 뉴스 끝날 무렵 1∼2개 꼭지로 배치, 구색 맞추기식 보도가 지속됐다.
선거일을 나흘 앞둔 지난 8일을 전후해 지방선거 관련 기사를 1면과 헤드라인 뉴스로 다루기 시작했으나 전체 지면 배치나 기사량은 여전히 월드컵에 우선 순위를 둔 형국이었다.
부정적 측면 부각=후보등록을 끝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출마자들의 병역, 전과, 세금 납부 실적 등을 공개하자 언론은 ‘후보자 12% 전과기록’, ‘출마자 9% 세금 한푼 안내’ 등 전체 통계수치를 뭉뚱그려 보도해 마치 출마자 다수가 전과자 또는 탈세범인 듯한 인상을 남겼다. 언론이 일부 출마자의 문제점을 규명하고자 했다면 의혹이 제기되는 사례를 집중 추적 보도하는 게 바람직한 태도였다. 또한 선거전이 가열되자 파생하는 문제점을 중심으로 ‘비방전 난무’, ‘금품살포’ ‘선거사범 급증’ 등 선거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하는 자세를 지속하기도 했다.
중앙정치 편향=지난 5월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언론은 정치권의 논리를 따라 지방선거를‘대선 전초전’으로 규정, 지방선거 관련보도 역시 대선 후보자와 중앙당의 동향 중심으로 지속했다. 대선이 지방선거의 상위 개념으로 자리잡으면서 지역 쟁점보다는 ‘수도권, 한나라당 “비리부각”…민주당 “40대 공략”’, ‘부산시장 선거, 한나라당 “DJ후계자” 민주당 “정면돌파”’ 등 중앙당의 대선 전략에 초점을 맞췄다. 당연히 수도권과 부산 등 주요 광역단체장 선거는 ‘대선 향배 가늠자’ ‘대선 후보 대리전’ 등 대선과 결부된 의미에서 해석되기 일쑤였다.
당연히 지방선거 자체의 이슈나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언급하는 보도사례나 지역 유권자들이 실생활에서 체감하는 지역현안과 요구사항에 대한 심층 기획, 차분한 현장 접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TV토론=일부 유력 후보들의 토론 기피 현상으로 무산되거나 상대 후보가 참여하지 않은 채 파행적으로 이뤄지는 사태가 잇따라 발생해 우려를 낳았다. 미디어를 통한 정책 대결로 유권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TV토론의 취지를 퇴색시켜 개선점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샀다.
또한 방송사들이 유력 후보와 군소 후보를 분리해 따로 TV토론을 실시, 민주노동당 등 소수정당 후보들이 항의하며 토론 도중 퇴장하거나 아예 불참하는 사태도 빚어졌다. 이들 군소정당 후보들은 지지율 5% 이상인 유력후보만을 별도로 부르는 것은 공정성의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정당 명부제=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처음 도입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관련한 초기 언론보도는 모두 5장의 용지에 기표해야 하는 투표방식을 소개하는 정도였다. 지방선거 관련보도가 대부분 판세 분석이나 후보와 정당간 공방전에 치중해 있다보니 정당투표제의 도입 경위나 취지, 의미 등에 대한 분석, 소개는 선거일이 임박한 시점에서야 눈에 띄기 시작했다. 결국 언론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민주노동당의 선전에서 드러났듯 신진 정치세력의 원내 진출을 촉진하고 정강·정책을 중심으로 한 유권자 선택을 가능케 해 지역주의 극복의 한 대안일 수 있는 정당투표제의 정치적 의미는 사후약방문식 선거결과 분석기사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김동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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