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멘스는 최악의 부패기업에서 최고의 반부패기업으로 거듭난 전화위복의 주인공이다. 2006년 말부터 공금횡령, 탈세, 비자금, 뇌물 등 부패 스캔들이 터지면서 최대 위기에 몰리자 개혁에 착수했다. 오랫동안 조직에 물든 부패 관행과 전면전을 선언했다. 위기는 기회로 바뀌었다. 준법경영을 본격화한 뒤 사상 최고의 실적을 연이어 기록했다. 전 세계로부터 높은 평가가 이어졌다. 지난해에는 포브스의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다우존스 지속가능지수의 경제환경부문 평가, 다보스포럼의 ‘글로벌 지속가능경영 100대 기업’에서 각각 1위에 오르는 ‘트리플 크라운’의 영예를 얻었다.
최근 한국 기업의 평판은 최악이다. 재계1위 삼성이 법위반 혐의로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거나 재판 중인 사건은 뇌물제공, 다스 소송비 대납, 총수 자택 공사비 관련 비자금 의혹, 차명계좌 등 무려 4건에 달한다. 재계2위 현대차도 다스 소송비 대납 혐의를 받고 있고, 재계5위 롯데의 총수는 뇌물혐의로 법정구속됐다. 재계6위 포스코의 계열사는 특별세무조사를 받고 있고, 재계8위인 한화의 총수는 배임죄로 집행유예 중이다. 재계9위 현대중공업은 입찰담합 혐의를 받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10대 그룹 중 절반 이상이 비리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론 기업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비리혐의를 받는 10대그룹 6곳 중에서 정치권력이 관여된 사례가 4곳에 달한다. 부패한 정치권력 밑에서 깨끗한 기업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한국 기업의 부패가 암세포처럼 사라지지 않는 또 다른 요인은 언론이다. 상당수 언론은 대기업 총수가 비리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마다 경영공백 위기를 내세워 ‘재벌 살리기’에 나선다. 심지어 비리 총수에 대한 선처를 ‘국익’으로 포장한다. 한국 언론의 일탈은 관점이나 철학의 문제라기보다, 대기업 광고에 의존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유방임을 추구하던 신자유주의가 급격히 퇴조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더욱 강조되는 추세다. 글로벌 사회에서는 부패에 대한 규제가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 한국 기업도 장기적으로 변화가 불가피하겠지만, 자발적 개혁에만 맡기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최고경영자가 비리 혐의로 형이 확정되면 법으로 경영참여를 금지할 필요가 있다. 정부 조달시장에서 사회책임경영(CSR)을 잘한 기업을 우대해야 한다. 검찰·사법·언론개혁을 통해 왜곡된 ‘재벌 봐주기’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