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바늘을 7년 전으로 돌리면 정반대의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에는 교육과학부가 역사교육 과정을 수정하면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자유민주주의’로 고치는 내용으로 집필 기준을 바꿨다. 보수와 진보가 정권을 바꿔 잡을 때마다 ‘자유’와 ‘민주’를 입맛에 맞춰 역사 교과서에 넣고 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보수가 ‘민주’를 기피하고, 진보가 ‘자유’를 배척하는 배경에는 사회적 다원성을 토대로 하는 자유주의와 사회적 동질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사이에 내재된 긴장 구도가 자리 잡고 있다.
근대는 자유와 민주 간 갈등을 봉합하고 대타협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계급적 지배로 대변되는 봉건체제에서 신과 국왕 중심의 질서를 타파하는 과정을 이끈 가치는 자유였다. 교회와 사제로부터의 자유, 봉건영주와 귀족으로부터의 자유 쟁취가 그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천부적 권리(자연권)라는 세례를 흠뻑 받은 자유는 자율을 상실한 채 불균형과 양극화를 초래하고 빈곤층들의 민주적 권리 행사를 무력화하는 부작용도 낳았다.
이런 혼란으로부터 개인과 사회를 구제할 수 있는 이론적·제도적 장치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 ‘사회계약론’이다. 자연상태에서 발생하는 무제한적 이익 추구의 자유를 억제하기 위해 권리를 상호 동등하게 포기·양도하는 게 골자다.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평등 간 균형을 시도한 사회계약론은 프랑스 대혁명의 씨앗을 뿌리고 근대 민주주의의 틀을 제공했다.
이처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로 발전해온 게 역사의 증언이다.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대의 민주주의’다. 대의 민주주의는 갈망하던 자유를 보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간 균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대의 민주주의 탄생 배경인 것이다. 이런 협력 관계를 통해 자유와 민주는 조화롭게 공생하며 ‘자유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게 된다.
따라서 ‘자유없는 민주’나 ‘민주없는 자유’ 모두 역사적 퇴행이요, 정치적 후진이다. 전통적 가치를 지키려는 보수나, 진전시키려는 진보의 정신에 모두 역행하는 시도다.
이런 류의 역행적인 시도는 역사를 비극으로 물들였다. 독일의 법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칼 슈미트는 1차 세계대전 패배로 황제가 물러나고 세워진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에 발생한 혼란상의 원인을 “자유와 민주의 동시적 추구가 가져온 위기”로 진단했다. 처방은 대의 민주주의의 철폐와 순수 민주주의로 포장한 ‘국가사회주의’로의 전환이었다. 그의 주장은 나치스를 잉태하는 이론적 토대로 활용됐다.
민주를 기피하는 자유가 ‘반(反) 보수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배척하는 민주 역시 ‘반 진보적’이다. 오히려 자유와 평등이 공존하고 화합하는 생태계가 민주적인 사회가 지향해야 할 길이다. 자유와 민주라는 두 존엄 가치 간 조화를 추구하는 정치철학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차장·신문방송학 박사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