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가 도박 브로커 로라최 씨의 증언을 토대로 한국의 언론계 거물들이 미국에서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도박을 즐겼다는 보도를 한 가운데 지난 97년 여름 서울지검 외사부에서 로라최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압수한 명단 속의 한 이름이 언론사주인 것으로 알려졌다.
97년 7월 서울지검은 미국에서 받지 못한 도박 빚의 수금을 위해 귀국한 로라최 씨의 호텔 방을 압수 수색해 40여 명의 이름과 금액이 적힌 명단을 발견하고 수사를 벌였다. 이 명단에는 실명 대신 외자 이름이나 영어명으로 자신만이 알 수 있도록 표기되어 있었다. 검찰은 이 명단을 근거로 수사를 벌여 로라최 씨가 이들 40여 명을 대상으로 수금한 내용이 실명과 함께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 기록를 작성했다.
최근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수사기록 가운데 한 군데는 성과 함께 John이라는 영문명과 그의 비서 이름에 이어 '186만 달러'라고만 적혀 있고, 추가적인 수사 내용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이 비서의 이름은 한 신문사주의 오랜 수행비서의 이름과 같으며, John이라는 영문명의 성은 그 사주의 성과 일치하였다. 이에 대해 당시 검찰 고위 책임자는 "그러한 이름의 인물을 수사한다는 보고를 받았으며, 그 인물이 언론사주라는 말도 들었다"면서 "하지만 로라최 씨가 명단을 부인해 더 이상 수사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로라최 씨를 수사할 당시 이미 명단에는 언론사주, 국회의원 등 거물급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검찰은 지방 기업인, 중소사업자 등과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둘째 아들인 원근 씨 등 4명만 구속해, 정씨의 가족들이 힘 없는 자들만 처벌한다고 각계에 탄원서를 돌리기도 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2일자에서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의 한국 고객 관리자였던 로라 최 씨의 증언을 토대로 한국의 언론계 거물들(media magnates)을 비롯한 기업인, 연예인 등이 미국으로 원정도박을 오곤 했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한 판에 10만 달러까지의 거금을 걸고 한국에서는 불법인 카지노 도박을 즐겼다는 것이다. 또한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의 한 '미디어 재벌'(media mogul)이 도박으로 310만 달러의 빚을 진 기록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기자나 간부가 이처럼 거액의 도박을 즐기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언론계 거물들이란 언론사주들로추정된다.
310만 달러를 빚졌다는 미디어 재벌은 당연히 언론사주이다. 따라서 검찰이 압수한 로라최 씨의 명단에는 언론사주의 이름이 한 명만 들어 있었더라도 실제로 해외에서 외환관리법을 위반하며 불법으로 거액의 도박을 즐기는 부도덕한 행태를 연출한 언론사주들은 복수인 셈이다.
이들이 공공성이 강한 언론사를 운영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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