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수련 전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위원장(58)은 해고된 지 27년, 수술실을 떠난 지 30년 만인 지난 7월17일 한양대병원 수술실 간호사로 복직했다. 정년 2년을 앞둔 차 전 위원장은 30년 전 한양대병원 노조 결성을 위해 다잡았던 마음으로 원직 복귀한 것이다.
그 기간 동안 그는 2번의 해고와 5번의 옥고를 치렀다. 이 때문에 차 전 위원장 뒤에는 ‘노동운동의 살아있는 전설’ ‘명성황후(명동성당에서 장기간 농성할 때 얻은 별명)’, ‘병원 노동운동의 거목’ 등 각종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차 전 위원장은 기회가 날 때마다 해직기자 복직을 위한 투쟁운동 등에 적극 동참하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지난 20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차 전 위원장은 아직 낯설고 고된 수술실 업무를 마치고 ‘KBS‧MBC 정상화 언론적폐 청산 촛불집회(구 돌마고 문화제‧이하 촛불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광화문을 오던 중이었다.
-국민들이 KBS, MBC를 포기해선 안 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젊은 세대들은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정보를 얻지만 중장년층은 아직도 KBS, MBC, YTN 등을 통해 정보를 많이 접한다. 이들 방송사가 제대로 서야지만 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바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민들이 양 방송사의 파업을 자기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게 너무 안타깝고 화난다.
대통령 한사람이 바뀐다고 해서 절대 바뀌지 않는다. 대통령이 늘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도 없고, 또 보수언론은 끊임없이 국민의 목소리와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어느 순간 무너지기 시작하면 이명박-박근혜 시절로 다시 넘어가는 것도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KBS, MBC의 파업은 노사 문제가 아니다. 국민 알권리,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보루를 바로 세우기 위한 정말 공익적 성격의 투쟁이다. MBC노조가 2012년 밀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노사 문제로 국민들이 방치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의 총파업을 알리기 위한 촛불집회에 빠짐없이 참가한 이유는.
과거 정권에서 빼앗았던 공영방송을 되찾아 오려면 국민적인 차원에서 달라붙지 않으면 안 된다. 권력은 감시하는 제도가 없으면 부패하고 오만해지기 마련이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란다면 1차 과제는 적폐청산이고 2차적으론 권력이 국민 위에 굴림하지 않고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언론이 바로 서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의 힘으로 공영방송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큰 소리를 칠 수도 있고 언론도 국민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촛불집회 참여율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는데.
올 때마다 참가자들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 오는 사람들마저 맥이 빠진다. KBS‧MBC 파업을 보면 하루하루 날은 가고 무노동‧무임금이라 월급이 들어오지 않아 조합원들의 가정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파업이 길어지고 있는데 또 한번 촛불의 힘으로 10만명이 모여 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KBS든, MBC든 언론사들이 오욕의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참 언론인들이 끊임없이 싸우면서 이 정도까지 온 것이다.
정권이 바꿨다고 해도 우리 스스로 중심이 돼 투쟁을 이뤄내야지만 힘도 붙고 사회적 이슈도 되는 것이다. 대통령과 정권이 의지가 있더라도 아직 곳곳에 적폐 세력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기회가 될 때마다 해직 언론인 복직 투쟁에 동참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해고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사측으로부터 해고당할 때 느끼는 모멸감을 모를 것이다. 정년연장제가 시행되지 않았다면 저도 우리 조합원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정년으로 밀려 나갔을 것이다. 저들은 시간이 지나면 현장감이 떨어져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같다.
MBC의 경우 해직자뿐 아니라 딴 곳으로 쫓겨 가신 분들, 그들이 느꼈을 모멸감과 분노가 저한테는 그대로 전해진다. 이는 정권의 눈엣가시였던 MBC노조를 깨기 위한 것이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KBS, MBC 경영진들은 단순히 방송을 망친 사람이 아니라 노동법을 위반한 사람들이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무겁게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다. 단순히 언론 부역자가 아니라 정말 악질적인 부당노동행위 사업주로서 처벌받아야 한다.
-해직 기자나 보도국에서 쫓겨나 유배지로 간 기자, PD들은 복직돼도 걱정이 많다.
이명박-박근혜 시절 방송에서 쫓아났던 기자, PD들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저의 경우 2010년 11월1일 복귀한다는 잠정 합의서까지 쓰고서도 돌아가지 못하다가 지난 7월 복직했다. 내후년이 정년이지만 그동안 수술실로 돌아가겠다는 게 제가 가졌던 원칙이었다. 수술실은 스페셜 한 파트라 일도 고되고 그간 수술기술이나 도구 등도 많이 발전해 트레이닝만 2년이 걸린다. 그럼에도 굳이 제가 수술실을 가겠다고 한 것은 제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수술실 안에도 보이지 않은 갑질 문화, 수직적 문화가 있다.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어떤 험하고 더러운 것도 견디자는 모진 마음을 먹고 복귀했다.
-버티고 있는 경영진이나 이사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김장겸, 김재철, 안광한 등은 양심을 외면하고 인간으로서 해선 안 될 짓을 한 사람들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왜곡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잔인하게 짓밟았다.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단죄를 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그게 재발 방지를 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물러나는 게 아니라 본인들이 한 것에 대한 마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KBS, MBC 기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KBS, MBC 조합원들이 흔들리지 않고 싸워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 MBC가 2012년 170일간 파업을 했을 당시에도 돈 한 푼 받지 않으면서도 대오가 무너지지 않았다. 그 당시 조합원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게 아니라 김재철 사장을 저지하기 위한 공익적인 일이라는 점이 더욱 대단한 것 같다.
지금도 세월호 때 못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국민들도 있다.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당연히 비판을 받아야 하지만 그 때 그 안에서 처절하게 싸웠던 분들에 대해선 격려하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분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힘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그 안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격려를 해야 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전국언론노조 산하 신문사‧방송사가 많다. 그들도 언론 노동자들이다. 노동자들이라고 하면 기본이 단결과 연대다. 기자는 기사로 말 한다고 하지만 언론 노동자들이 전체적으로 한번쯤 펜을 같이 놓고 왜 같이 항의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한번쯤 반성해 봐야 한다.
김창남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