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편집인 IPI 연설문 전문

한국은 정부 소유의 KBS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사가 형식상으로는 민간언론이다. ‘민간’이라는 말이 소유구조 또는 독자적인 편집권에 관련된 표현일 수 있으나 적어도 언론사 소유구조 차원에서는 그렇다.

소유구조 면에서도 한국언론은 여러 형태가 있다. 가족, 종업원, 정부 또는 재벌이 소유하는 언론사가 있다. 편집권 독립에 관한 한 한국에서 ‘공영’과 ‘민간’의 차이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다. ‘민간’이 반드시 ‘독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정부 의도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정부의 힘이 미치지 않는 민간언론은 없다. 각 언론사의 저항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한국의 민간언론은 사주, 주주, 광고주와의 이해관계를 극복하는 데 몇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민간언론의 진짜 장애물은 정치권력이다. 언론사주와 광고주들에게서 받는 압박은 정부 압력에 비하면 거의 미미한 수준이다.

정부는 수년에 걸쳐 언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전술을 수정해왔다. 예전에는 간단히 인사담당자를 위협하거나 편집자를 대놓고 위협해 논설내용을 바꿨다. 이런 것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방법이었다. 요즘에는 그 수단과 방법이 매우 교묘해졌다. 직접적인 위협이나 압력은 없어졌으며 기자를 체포하는 일도 더 이상 없다. 그러나 도청, 감시, 비공개 수사는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가장 관심을 끄는 전술적 변화는 기자나 논설위원을 목표로 삼지 않고 사주의 개인적 약점을 들추는 방법으로 사주를 직접 겨냥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세무조사가 이같은 사례를 보여준다. 한국 민간언론은 작년에 정부로부터 치밀한 세무조사를 받았고 신문사 사주 3명이 천문학적인 추징금 부과와 함께 구속됐다. 이에 대한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현 정부는 한국 역사상 가장 가혹한 언론탄압을 한 정부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며칠전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독립적인 신문 가운데 하나인 동아일보의 편집인이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정부 주장 때문에 사임했으며 그는 비윤리적인 언론인으로 낙인 찍혔다. 더구나 언론탄압 당시 정부조치를 지지했던 상당수 여당 국회의원과 몇몇 진보적인 NGO가 언론사 소유지분를 제한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최대 주주가 30% 이상의 지분을 가질 수 없다는 법률 개정이 한 예다. 이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리고 집권 민주당의 차기 대통령후보 지명자는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어느 한 신문사를 국유화하겠다고 말했으나 나중에는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선일보가 자신에 대해 왜곡된 보도를 했다면서 조선일보를 상대로 격렬한 투쟁을 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이는 곧 자신이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같은 압력은 민간 신문사가 집권당에 협력하지 않고 정부의 보건의료, 교육, 북한 문제 등에 대해 줄곧 비판을 가해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민간 언론사에는 또 한가지 기이한 현상이 존재하고 있다. 한국언론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뉘어 서로 상대방을 헐뜯는다. 이는 정상적인 경쟁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언론사의 이념적 입장에 관한 싸움이다. 예컨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좌파적인 신문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결론적으로, 민간신문사 간의 전선은 정치적 강자들과 이를 비판하는 세력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유구조 변경 운운은 비판언론을 침묵시키겠다는 구실일 뿐이다.

지금 한국은 12월 대선을 앞두고 중요한 실험을 하고 있다. 이번 대선결과에 따라 민간언론의 존재 자체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할 수 있으며 민간언론의 형태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이같은 갈등의 저변에는 이념적 대결도 존재한다. 민간언론이 자체정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한 경영과 정확한 보도, 그리고 독자들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인들에게 전제적(專制的)인 민간언론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점 역시 스스로 고쳐나가야 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언론은 사설집필에 있어서 시장논리가 아닌 정치적 입장에 따라 영향 받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같은 환경 속에서 편집권의 독립을 유지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다. 오랜 경험을 통해, 나는 정치권력이 언론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을 기다리기 보다 언론이 스스로 이를 지키는 편이 낫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정치권력은 비판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언론자유 수호는 기자, 편집인, 논설위원, 발행인 등 모든 언론 종사자들의 정신에 달려있다.

우리들은 지난해 이같은 어려움을 극복했다. 한국에서 기자가 되거나, 신문사를 경영하려면 절대적으로 깨끗해야 할 뿐 아니라, 비리에 한발짝도 접근해서는 안된다. 특히정치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편집국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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