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정당은 귀 기울여 듣는 존재여야 한다.
사람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울분과 분노를 대신 토해내고 거리로 뛰쳐나가 함성을 지를지언정 우선은 잘 들어야 한다. 잘 듣고 진지하게 생각한 다음에 나오는 행동은 좀더 적확하고 울림있는 반응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지난 5일 방영된 ‘MBC 스페셜-국민 참여 경선’의 1부 ‘정치, 시민이 바꾼다’에 대해 한나라당이 편파방송이라고 비난한 뒤 편파방송 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 다음날 MBC를 찾아가 항의한 것은 도가 지나쳤다. 이회창 대통령 후보가 이 프로그램의 2부 ‘개혁의 조건’ 인터뷰를 거부한 것이나 소속 의원의 출연 거부도 책임있는 원내 제1당의 문제해결 방식을 넘어선 감이 있다. 문제의 수위에 비해 대응이 다분히 감정적이고 즉자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누구든, 어떤 정당이든 신문과 방송의 편파성에 대해 항의할 수 있다. 하지만 공당의 행동에는 그 만큼의 무게와 논리적 타당성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이번 프로그램이 편파적이었다는 한나라당의 지적은 핵심을 짚은 것이다. 애초 기획의도 자체가 ‘정치, 시민이 바꾼다’여서 민주당과 ‘노사모’에 렌즈를 들이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민주당의 국민경선은 적어도 기존 정당의 틀과 관성에 안주해온 정치인이나 정당인에게 그 틀을 깰 것을 각성시켰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의 포커스를 받을 만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우리는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민주당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변화의 바람이 있었는지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속성상 기획의도에 맞지 않는 사안을 소홀히 다루었다고 질타한다면 이런 지적은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경선이 국민들로 하여금 민주주의와 지도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는지를 돌아보았어야 했다. 그런 성찰도 없이 국민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방송사에 몰려가 항의한다면 이는 특정 종교집단과 다르지 않다. 또 개인의 방송 출연을 집단적으로 막는 일이 가능하고 온당한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 프로그램이 선거 보도나 토론 프로그램이 아니고 다큐멘터리이기에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른바 ‘동시간’ 원칙에 근거해 그 공정성을 재단받을 이유도 없다고 본다. 미국 통신법 315조 역시 다큐 프로그램에 대해선 ‘동시간’ 원칙에서 예외로 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혹시 이번 문화방송에 대한 편파 지적이 이 사안의 본질적인 비중과는 상관없이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언론에 대한 기선을 잡겠다는 의도가 개입된 것이라면 더욱 문제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사실왜곡과 침소봉대가 아니라면 정당은 좀 더 분별있는 접근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정을 촉구하는 것이 옳다.
정당이든, 언론이든 하늘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문제삼아선 결코 하늘을 바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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