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도발은 박근혜 게이트 정국의 주요 변수다. 박 대통령과 친박 세력이 거대한 촛불민심 앞에 무릎을 꿇는 듯 보이지만 북한 변수를 통해 정국의 반전을 노리고 있을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박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 상태에서도 유독 외치(군사외교) 권한을 유지하는 데 집착했다. 실제로 최순실 국정농단의 증거가 담긴 태블릿PC가 공개된 직후 박 대통령은 내치를 국회 추천 총리에게 맡기고 자신은 외치를 맡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그래도 촛불의 분노가 수그러들지 않자 내놓은 것도 ‘4월 퇴진-6월 조기 대선’ 일정이다. 서울 한복판에 200여만명이 집결하고, 거의 모든 언론이 자신의 각종 비리와 의혹을 폭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박 대통령은 굳이 내년 봄까진 청와대를 떠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운 셈이다. 퇴진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사드와 한일군사정보호협정 등의 추진에 더욱 속도를 내는 모습도 심상치 않았다.
당장 물러나면 그만큼 모욕도 덜 받고, 퇴임 후 안전도 유지할 수 있을 지 모르는데 굳이 4월까지 버텨야할 절체절명의 이유라도 있는 것처럼 비친다.
이 대목에서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의 이메일계정 공유 아이디가 ‘greatpark1819’였다는 점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출신인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아이디의 의미가 “박 대통령이 18대에 이어 19대에도 실질적으로 대통령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폭로했다. 조 의원의 해석대로라면 이번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더라도 박 대통령은 19대에까지 자신의 실질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뭔가 준비했어야 한다.
이번 게이트 직전까지의 박 대통령 행보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무당끼 넘치는 최순실은 ‘북한 조기붕괴론’을 예언했고, 박 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개성공단의 전격 폐쇄나 사드 도입,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등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국군의날 기념사에선 북한 주민들에게 탈북을 촉구했다.
박 대통령의 이같은 행보와 맞물려 한미 양국 내에서 대북 선제타격론이 고개를 들었다. 마이크 멀린 전 미 합참의장이 지난 9월 미국외교협회 토론회에서 대북 선제타격론을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 국내의 한 예비역 장성도 ‘박 대통령의 내년 상반기 남북 군사적 충돌 계획설’을 주장하고 나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미 양국에서 대북 강경파나 온건파나 모두 내년 초 남북관계에 심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을 예견하고 있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탄핵안 가결로 박 대통령의 내·외치 직무가 모두 정지되면서 이런 불길한 시나리오가 그대로 실현될 가능성은 낮아졌다. 하지만 내년 1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취임과 2월 김정일 생일, 그리고 한미 연합훈련 등으로 이어지는 일정을 보면 방심은 금물이다.
궁지에 몰린 권력자들은 국가 안보가 아니라 자신의 안보를 위해 사이코패스같은 결정을 내릴 때가 적지 않다. 맹수 사냥꾼처럼 촛불민심도 최후의 승리까지 한반도 정세에 대해 긴장을 늦춰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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