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조선 주도…‘좌경·급진’ 여과없이 중계
근거 따지기 보다 ‘인용’ 빌미 마구잡이 보도
민주당 경선과 관련 언론이 후보자의 이념 문제에 대한 객관적 접근과 분석보다 후보자의 말을 중계하는 형식으로 불필요한 색깔논쟁을 확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무현 고문에 대한 이인제 고문의 색깔시비에 대해 그 근거를 따지기보다는 ‘인용구’라는 편리한 형식을 빌어 중계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 좌경화 막겠다” “급진좌파는 경제에 독약” 등 이인제 고문의 주장을 인용보도 형식으로 검증 없이 보도함으로써, 비록 노 고문측의 반박을 함께 다뤄주기는 하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노 고문의 정책이나 주장이 ‘좌경적’이거나 ‘급진 좌파’에 가깝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또 노 고문의 정책이 실제 ‘좌파’ ‘진보’ ‘개혁’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자체 분석이나 검증은 외면한 채 경쟁 후보가 사용하는 좌경 등 ‘색깔론’ 용어를 무비판적으로 사용, 독자들의 오해를 부르고 있다.
이런 인용 형식을 빈 색깔론 보도는 특히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아일보는 3월 29일자 1면에 ‘이인제-노무현 이념논쟁 격화’란 주제목 아래 ‘이 “노, 재벌주식 노동자에 분배 주장”/노 “사상검증하려는 매카시적 방법”’이란 보조제목을 달아 색깔론 보도에 나섰다. 조선은 하루 앞선 3월 28일자 1면 ‘이인제 “당 좌경화 막겠다”/노무현 “음모론 사과하라”’ 기사와 4면 ‘이측 “급진좌파는 경제에 독약”/노측 “음모론 대신 색깔론이냐”’ 기사에서 전날 이인제 고문의 라디오 인터뷰 등을 중계하는 형식으로 ‘색깔론’ 공방보도를 본격화했다.
조선과 동아는 지난 1일 경남, 전북 경선결과를 보도할 때를 빼고는 1면 스트레이트와 정치면 관련기사의 방식으로 두 후보간 색깔공방 보도를 지속했다. 2일자엔 이인제 고문측의 주장을 인용 ‘노 진영에 한총련 참여 의혹’(동아), ‘노, 90년 미군철수 주장’(조선) 등의 제목으로 보도했다. 특히 ‘노사모에 한총련이 참여하고 있다는 의혹’의 경우 언론이 충분히 취재를 통해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것임에도 발표 내용과 이에 대한 반박을 인용 형식으로 보도하는 데 그쳤다.
이런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신문방송학)는 “특정인의 과거 발언 중 일부 내용만을 문제삼는 방식은올바른 이념 검증이 될 수 없다”며 “더욱이 특정 후보가 타 후보에게 가하는 공세식 주장을 중계하듯 보도하는 태도는 언론 스스로가 판단과 분석의 역할을 포기한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지적했다.
언론의 이런 태도는 또 이 고문측이 색깔 공세의 근거로 제시한 내용의 일부를 고의적으로 변질시킨 대목까지도 무비판적으로 인용하는 문제를 낳았다.
조선 등은 이 고문이 지난달 28일 전주 TV토론에서 지난 2월 보도된 중앙일보의 ‘의원·대선후보 이념성향조사’ 결과를 근거로 “모 언론의 정치인 좌표조사에서 극좌 0, 극우 10으로 할 때 노 후보는 1.5, 나는 4.8이 나왔다”고 발언한 것을 그대로 보도했다. 그러나 실제 조사에선 ‘극좌’ 또는 ‘극우’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중앙은 지난달 29일자 신문에 이 조사 결과를 재인용 보도하면서 “0은 가장 진보, 10은 가장 보수”라고 표현했다. 이 고문측이 노 고문의 진보성향을 문제삼는 근거로 월간 말지 3월호에 실린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 인터뷰의 일부 내용을 제시한 것과 관련, 동아일보를 제외하고는 실제 인터뷰 과정에서 권 대표가 노 고문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는지에 대해 확인하지 않았다. 이 고문측의 김윤수 공보특보는 권 대표가 “노 고문은 진보정당의 대표적 적임자”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언론에 밝혔으나 실제 권 대표 인터뷰 내용엔 이런 발언이 없다.
김동원 기자
[email protected]
김동원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