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언론에 바라는 점은 한결 같았다 "있는 그대로 전해달라"

[현장을 달리는 기자들]성주의 목소리를 듣다-조규덕 영남일보 기자

▲조규덕 영남일보 기자

성주군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예정지로 결정되면서 기자는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곧바로 현장부터 달려갔다. 예상대로였다. 주민들은 정부의 일방적 사드 배치 결정에 잔뜩 격앙돼 있었다. 폭염 때문에 다소 힘들었지만 취재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주민들은 사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들려줬다.
한 어르신은 “우리 동네에 사드 배치가 되지 않도록 꼭 좀 도와 달라”며 기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15일 사드 배치로 갈라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황교안 국무총리가 성주를 방문한 뒤부터 상황은 급박해졌다. 당시 모든 언론들은 성주 주민들의 동향을 실시간 앞다퉈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총리감금’ ‘외부세력’ 등 성주 군민들을 자극시킬 여지가 농후한 용어가 동반된 기사가 쏟아졌다. 이에 성주 주민들은 “상당수 언론이 성주의 목소리를 왜곡한 채 정부편에서 기사를 쓰고 있다”고 힐난했다.


기사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은 주민들은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일부 언론사 기자들은 현장에서 쫓겨나야 했다. 성주에서 언론사 기자는 일부를 제외하고 이른바 ‘기레기(기자+쓰레기)’로 낙인 찍혀 있었다. 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명함을 건넸지만 주민들의 시선은 전과는 사뭇 달랐다.


주민들과의 인터뷰에는 보이지 않는 큰 장벽이 가로놓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민들 입장에서 기사를 쓰겠다고 항변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만큼 성주 주민의 언론에 대한 불신은 컸다. 자신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은 물론, 일부 언론의 편향된 시각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이들이 언론에 바라는 점은 한결같았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제발 있는 그대로 전해 달라는 것.


이에 성주의 이 같은 현장 분위기를 데스크에 전했고, 회의결과 영남일보는 성주 주민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하고, 문제 해결 과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릴레이 인터뷰 ‘성주의 목소리를 듣다’를 기획했다.


▲지난달 21일 이창우 전 성주군수가 스마트폰으로 서울 상경 집회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조규덕 기자 제공)

어렵게 섭외한 첫번째 인터뷰 주인공은 성주군수 출신으로, 지금은 동네 ‘약사 아저씨’로 일하는 이창우 전 성주군수(79)였다. 그는 지난달 15일 황교안 국무총리의 성주 방문 당시 일부 언론에서 ‘감금’이라는 자극적 표현을 쓴 것에 대해 몹시 못마땅해 했다.


이 전 군수는 “총리가 탄 버스 주위로 수백명의 경호 인력이 에워싸고 있었고, 총리 자신도 감금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 언론에서 감금이라고 하니까 타 지역 사람들이 성주군민을 폭도로 알더라. 총리가 귀한 시간 내서 왔는데 누가 감금을 하겠나. 우린 5분이라도 더 대화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주인공은 성주지역 문화발전에 앞장서고 있는 도일회 성주문화원장. 그는 “그곳(성산포대 부근)은 조상대대로 내려온 문화재가 있다. 우리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잘 보존해 후대에 전할 의무가 있다”고 역설했다.


열혈주부 배미영씨(39)는 “사드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며 인터뷰 중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대규모 삭발식을 앞두고 만났던 서은설 대한미용사회 성주군지회장(42)은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냉정한 마음을 갖고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자”고 말했다.


난제해결을 위해 언론의 역할을 강조한 주민도 적잖았다. 사드 반대 촛불집회에서 언론 브리핑을 맡고 있는 배윤호씨(61)는 “언론을 통해 투쟁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 지 알 수도 있고, 이 기나긴 싸움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다. 언론은 우리 사회가 병든 것을 치료할 수 있고, 병들지 않게 예방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동안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성주 주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쉼 없이 들었고, 앞으로도 이같은 취재행보는 계속될 것이다. 성주 주민들이 촛불을 밝힌 지도 벌써 40일이 넘었다. 사드 사태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에서 접점을 찾아, 일손을 놓고 있는 성주 주민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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