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 뜨악한 게 아니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월27일자 기사에서 이 광고를 ‘대국민 협박 광고’라고 표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전기 무척 아껴씁니다. 집에 혼자 있을 때는 방에만 불을 켜두고 지냅니다. 안 쓰는 콘센트는 꼭 뽑아 두고요. 열대야와 씨름하면서도 에어컨은 가급적 켜지 않습니다.
그런 저에게 한수원은 있지도 않은 정전 사태 책임을 물었습니다. 기겁을 할 수밖에요. 게다가 대정전 사태를 피하려면 원자력 발전 설비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논리는 고개를 갸웃하게 했습니다.
사실 애초에 한국 가정용 전력 소비량은 산업용이나 공공·상업용에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면 용도별 전력 소비 비율에서 2012년을 기준으로 산업용 전력 소비량은 전체의 52%를 차지합니다. 공공·상업용은 32%입니다. 반면 가정용은 13%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광고는 처음부터 대상을 잘못 짚은 셈입니다. 현재 해당 광고는 검색을 해도 찾을 수가 없네요.
그러다 원전 확대를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우리나라는 전기가 남아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확인에 들어갔습니다. ‘신고리 5·6호기 필요하나’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한 까닭입니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를 넘어 숫자만 봐도 식은땀을 흘리는 저라 생소한 단어와 숫자로 가득한 자료를 읽는 데만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모두가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설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시민의 정보 접근권을 제한하는 꼼수는 아닐까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부가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전력소비 증가율을 2013년과 2014년 각각 2.9%, 3.4%로 크게 예상했다는 겁니다. 실제 증가율은 1.8%, 0.6%에 그쳤습니다.
전력소비 증가율과는 반대로 발전설비 규모는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습니다. 이에 더해 정부는 원전 확대 정책까지 펼치고 있습니다. 지난달 23일 결국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울산 울주군 일대에 들어설 신고리 5·6호기 건설안을 허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역’ 탄생(?)에 환경단체 반발은 예상답게 상당했습니다.
허가가 난지 보름도 안돼 지난 5일 울산 동구 동쪽 52㎞ 해상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14일까지도 여진은 이어졌습니다. 첫 지진 발생지에서 고리 원전까지 거리는 약 65㎞에 불과합니다.
지진을 느꼈을 때 가장 먼저 ‘원전은 어쩌나’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직업적인 반응일 수도 있지만, 원전 가까이 살고 있는 지역주민으로서 우려는 컸습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이 원전 안전성에는 영향이 없다고 했지만, 깊어지는 걱정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원전 건설 계획 백지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 상황에서 같은 터에 다수 원전을 짓는 데도 안전성 검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지적까지 나오니 지역주민 불안이 클 수밖에요.
최근에 서울을 갔던 적이 있습니다. 서울에 가까워지면서 꽤나 많은 송전설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전엔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원전 관련 취재를 하고 나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 많은 전기를 누가 다 쓸까. 정부는 국토의 대부분을 송전설비로 가득 채우고, 원전을 더 세울 의향인 건지. 지금도 그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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