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 연성화·인원 턱없이 부족…지면 채우기 바빠
“기자인지 사진사인지 모르겠다.”
IMF 이전과 비교해 여전히 부족한 인원으로 늘어난 지면을 감당하기에 급급한 나날을 보내는 한 신문 기자의 토로는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게 들리는 게 바로 “요즘엔 사진 특종을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신문의 얼굴인 1면에 외신 사진이 오르는 빈도가 높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사진 특종이 없는가”란 물음을 따라서 부족한 인원 수, 연성화된 편집방향 등 사진기자들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사진 특종이 없다.”
최근 각 신문의 주요 지면에 오르는 사진 기사들을 보며 한 신문사 중견 간부는 이렇게 평했다.
간혹 기획 사진들이 눈길을 잡기는 하지만 사건 사고 등과 관련해 취재 현장에서 포착되는 전통적 의미의 ‘특종’이라고 할 사진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다른 배경과 여러 해석도 있긴 하지만, 사진기자협회가 연례행사로 갖고 있는 보도사진전의 지난해 대상부문 수상작이 선정되지 않은 데서도 그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그럼 왜 사진 특종이 없는 것일까.
외형적으로는 특종을 낚을 만한 사안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 신문사의 사진부 차장은 “사회적으로 큰 뉴스거리가 없었다. 사진 기사를 건질 만한 사안이 있다면 당연히 달라붙어 취재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정보원의 감소 문제도 제기된다. 최근 특검이 아태평화재단 이수동 전 이사의 가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는 것과 관련, 한 사진기자는 “아침 TV뉴스에서 새벽녘에 이뤄진 가택수색 현장을 지켜봤지만, 스트로보(플래시)가 터지는 것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검의 압수수색 현장을 방송 카메라기자는 동행 취재했지만 사진 기자는 없었다는 얘기다. 이 기자는 “이제 정부나 기관의 취재원들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언론홍보 면에서 사진보다는 방송 영상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또 방송사 취재기자들의 ‘그림’에 대한 가치 판단이 신문 취재기자와 다르다”고 말했다.
큰 사건 없고 정보도 줄어
일반인의 제보가 신문보다는 방송 쪽에 더 몰리고 ‘볼펜’ 기자들의 사진에 대한 배려 역시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진 기자들은 취재원에게 별도의 연락처를 알려주거나 사진부에도 보도자료를넣어주기를 당부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특종 부재 현상의 더 깊은 곳엔 사진부의 인적 구성이나 취재 시스템, 편집방향의 변화 등 구조적인 요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선배, 제가 기자인지, 아니면 사진사인지 모르겠어요.”
한 중앙일간지의 8년차 사진기자는 얼마전 술자리에서 고민을 털어놓은 후배 사진기자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일상을 쫓기에 급급했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현재와 같은 취재 일정이나 시스템 아래선 특종은 고사하고 주어진 하루의 취재 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벅차다. 보다 좋은 사진을 만들려면 기획도 하고 고민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창의력을 발휘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 지면 채우기 식으로 일하다보면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인력이 부족한 여건에서 부과되는 업무 하중은 ‘특종’은 고사하고 기자들을 지치게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현재 각 언론사 사진기자들의 수는 IMF 이전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실정이다. 프리랜서를 제외한 국내 보도사진 기자들을 총망라하고 있는 사진기자협회가 매년 집계하는 회원 현황에 따르면, IMF가 터지기 이전인 지난 97년 회원수는 총 59개 언론사에 554명이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난해 말 기준으로 언론사는 65개로 늘어났으나 회원수는 539명으로 줄었다. 언론사들이 앞다퉈 인력감축을 시도했던 IMF 직후인 지난 98년 회원수가 487명이던 데에 비하면 재충원된 것은 사실이나 IMF 이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앙 일간지의 경우 1일 발행 지면이 당시에 비해 10개 면 이상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인원은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지면 보수화 등 구조문제도
실제 비교적 인원수가 많은 편에 속하는 한 중앙일간지 사진부의 경우 기자수가 20명에 육박하지만 데스크와 해외 출장자, 숙직 근무자 등을 제외하면 실제 낮 시간 동안의 가동 인력은 10명이 채 안된다. 이런 상황에서 사진 기자 1명이 하루 평균 담당하는 취재 건수는 3∼4건, 많을 경우엔 5∼6건에 이른다. 여기에다 숙직과 야근이 주 1회 고정 편성돼 있어 장기간 특정사안에 매달려 있기가 불가능하다.
한 신문사의 6년차 사진 기자는 “특정 사안에 대한 집중 취재를 기획하면 사진취재의 특성상 장시간 현장을 지켜야 하는데 부족한 일손을 메우고 또 야근이나 숙직 근무를 하다보면 그렇게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말했다.
한 신문사의 사진 담당 부국장은 “특종은 순간 포착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현장을 오래 지키고 있느냐에 따라 판가름 날 때가 많다. 그런데 현재의 인력구조에선 특정 사안에 인력을 장기간 묶어 둘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면이 보수화·연성화되는 것도 한 이유로 지목된다.
전통적 의미의 사진 특종은 주로 사건 사고, 과거의 경우엔 시위 현장 등에서 많이 나왔다. 하지만 최근 시위의 양상이 과거 군사정권 때와 달리진 점도 있지만, 신문 지면의 편집방향이 이런 사건 사고나 시위 기사의 경우 단신 처리하는 사례가 많아 사진 취재에 나서는 일도 드물다는 것이다. 또 부족한 인력 때문에 시위나 사건 사고 현장에 사진기자를 내보내는 회수가 줄어들게 되고 장기간 현장을 지키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앞서 6년차 사진 기자는 “선배들이 사석에서 ‘취재를 나갈 때면 맨 먼저 방독면부터 챙겼다’고 무용담을 얘기하지만 요즘 젊은 기자들에겐 와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중견 사진기자는 “지면의 비쥬얼화를 얘기하면서도 취재부서나 다른 편집국 간부들은 사진부를 마치 편집 지원부서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다리는 정신’ 필요
물론, 사진 기자들이 분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신문사의 사진부 데스크는 “젊은 기자들이 특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돼 있지 않은 것도 문제이지만, 기자들 스스로가 특종을 해 보겠다는 모험과 도전 정신이 약해진 것도 문제”라며 “타사에 ‘물먹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소극적 자세를 떨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향신문 노재덕 사진부장은 사진기자협회가 발행하는 ‘사진기자’ 12월호에 실린 데스크 칼럼에서 현장 취재기자들에게 ‘기다리는 정신’을 강조하기도 했다.
“오늘날 사진기자는 디지털로 인해 취재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취재-전송-마감-제작에 이르는 시스템에 일련의 디지털 환경이 가져다준 속도와 편의성에 젖어 우리가 많은 것들을 가볍게 여기고 있지 않는지 자문해 본다.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게 디지털 마인드도 우리가 갖춰야 할 자세이지만, 보도사진가로서 잃지 말아야 할 덕목은 한 장의 ‘진실한 사진’을 찾기 위해 겸손하고 무던하게 기다리는 정신이라고 본다.”
독자들은 오랜 기다림 속에서 순간을 포착, 압축된 메시지를 한 컷에 담는 사진을 단순한 특종이 아닌 역사로 기억한다.
김동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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