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왜'가 빠졌다
노동문제 '사건'으로 접근…구조적 문제 못짚어
철도·발전노조 파업보도 점검
철도·발전 노조 연대파업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는 노동문제를 사건 기사로 접근하는 데서 비롯된 문제들을 다시금 드러냈다.
이들 노조가 민영화 철회 등을 요구하며 파업사태에 이르기까지 기자회견 등을 단순 기사로 처리하는 등 관심을 갖지 않다가 막상 ‘불법’ 파업에 들어가면 ‘대란’을 우려하고 나아가선 경제회복의 걸림돌인양 몰아붙였다.
이들 노조가 파업 이틀째를 맞은 지난 26일 국민일보는 1면 머릿기사 제목을 ‘회복경제 파업 찬물’, ‘춘투 현실화 땐 생산-수출 큰 타격 우려’ 등으로, 문화일보도 같은날 1면 머릿기사에 ‘물류 체증 겹쳐 최악 교통란’이란 제목을 달아 파업의 부정적 영향만을 부각시켰다.
조간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민 볼모 불법 파업’, ‘민영화 지연 땐 신인도 하락 우려’(이상 26일자 조선 3, 4면), ‘물류난·교통마비…오래 가면 경제 치명상’(중앙 26일자 3면) 등의 제목으로 노조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의 부정적 파급 효과를 강조했다. 특히 동아일보의 경우 ‘불법파업에 강력 대처하라’(사설), ‘노조 불법 파업엔 타협 없다’(2면) 등의 제목을 달아 대화를 통한 사태해결 보다는 정부의 강경한 대응을 주문하는 태도를 보였다. 언론은 또 ‘정부·정치권 무책임이 화 불러’(25일자 문화), ‘안이한 정부 화 키워’(26일 동아) 등의 제목으로 철도·발전노조 파업에 대한 정부 당국과 정치권의 대응을 질타했다.
물론, 이들 노조의 파업이 현행법상 불법인 점은 분명하다. 또 정부 당국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데에 파업사태가 촉발된 한 원인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 언론은 파업사태에 이르러 노조와 정부당국을 질타하는 게 역할의 전부였을까.
이번 철도와 발전노조의 파업이 언론 스스로 ‘대란’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사태를 예상해 볼 수 있는 문제였다면 당초와 같이 단순 사건기사 차원의 접근은 부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은 문제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감지한 지난 19일 기자회견 이전에는 별 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들 노조가 지난해 가을 공동투쟁본부를 구성해 연대행동에 나선 것은 물론, 올해 들어서도 이미 두차례나 파업을 경고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지만, 언론은 이를 단순 기사로 처리하거나 외면했을 뿐이다.
또 이들 노조 파업의 핵심쟁점 가운데 하나인민영화 문제가 해외 신인도 하락을 우려할 정도의 심각한 사안이었다면 언론은 이를 사회적 의제로 설정, 여론을 환기시키고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당사자들 사이에 합리적 해결을 주문하는 등의 역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언론은 사태가 초읽기에 들어가서야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언론이 노동계의 임금인상 투쟁은 물론, 이번과 같은 공공부문 노조의 파업을 사회의 주요 의제나 관심사가 아닌 단순 사건으로 다뤄 온 관행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한 노동 전문기자는 “언론이 노동문제를 사건기사로 바라보는 시각을 고치지 않는 한 노동문제를 의제로 설정하거나 사전 여론환기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교섭 진척상황이나 위법성 문제, 충돌 여부 등 현상적 측면에만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파업 이틀째인 26일 주가가 19개월만에 800선을 회복한 덕분에 노조 파업이 ‘주가 폭락’의 주범이란 누명을 쓰지 않은 게 다행일 뿐이다.
김동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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