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은 시대를 밝힌 지성인"

경향·사설 통해 애도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지난 15일 별세했다. 향년 75 (뉴시스)

“언약(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지난 15일 별세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자신의 마지막 저서 ‘담론’에서 이 글귀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언약들이 언젠가는 여러분의 삶의 길목에서 꽃으로 다

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고인의 영결식이 치러진 18일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고인의 떠나는 길을 애도했다.


경향은 사설 <‘시대의 스승’ 신영복 선생의 타계와 ‘연대의 가치’>에서 “고인은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준 지성이자, 앎과 삶이 일치한 지식인이자, 절제와 품격을 갖춘 ‘어른’이었다”고 추모했다.


▲경향신문 사설

사설은 “고인이 온 생애를 매달린 화두는 사람 사이의 관계·연대를 통한 변화였다”며 “연대와 공존의 가치는 산 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의미있는 변화란 몇몇의 명망가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다. 소수 지식인의 현학적 담론으로 이끌어낼 수도 없다. 많은 사람이 손을 잡고, 다양한 층위에서 작은 실천이라도 쉼 없이 해야 한다”고 했다.


경향 사설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이런 대목이 있다. “교도소의 우리들은 (여름 징역)보다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여름 징역은 바로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며 “한국이라는 공동체는 지금 ‘여름 징역’을 살고 있는 것 아닌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 ‘더불어 숲’의 가치가 절실하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 <‘시대의 등불’ 신영복 선생을 보내며>에서 “선생은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의 야욕을 현실화하기 시작한 때부터 그 뒤를 이은 신군부가 강압 통치 끝에 민주항쟁 앞에 물러설 때까지 꼬박 2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 기나긴 고통과 억압의 생활을 그는 희망으로 승화시켰다. 분노와 좌절로 가라앉을 수 있었던 하루하루를 성찰과 공부, 깨달음으로 채워 마침내 새 출발의 ‘작은 등불’을 그려냈다”고 평가했다.


▲한겨레 사설

한겨레는 “시대의 희생자이면서, 시대를 밝힌 지성인 선생의 가르침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에게 사랑이든 생활이든, 또한 실천이나 인식이든 ‘관계’ 없이는 있을 수 없고 바로 설 수도 없다”며 “깨달음과 공부도 궁극에는 세상을 바꾸는 데 목적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런 변화는 기존의 가치를 지킬 뿐인 중심부가 아니라, 자유롭고 새롭게 자신의 길을 만들어내는 ‘변방’으로부터의 열정에서 비롯한다”고 했다.


고 신영복 교수는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숙명여대 경제학과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교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복역한 지 20년 20일 만인 1988년 8월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그는 출소 후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했으며 2006년 정년퇴임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의 엽서’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청구회 추억’ ‘변방을 찾아서’ ‘느티아래 강의실’(공저), ‘신영복-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등의 책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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