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별세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자신의 마지막 저서 ‘담론’에서 이 글귀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언약들이 언젠가는 여러분의 삶의 길목에서 꽃으로 다
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고인의 영결식이 치러진 18일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고인의 떠나는 길을 애도했다.
경향은 사설 <‘시대의 스승’ 신영복 선생의 타계와 ‘연대의 가치’>에서 “고인은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준 지성이자, 앎과 삶이 일치한 지식인이자, 절제와 품격을 갖춘 ‘어른’이었다”고 추모했다.
경향 사설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이런 대목이 있다. “교도소의 우리들은 (여름 징역)보다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여름 징역은 바로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며 “한국이라는 공동체는 지금 ‘여름 징역’을 살고 있는 것 아닌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 ‘더불어 숲’의 가치가 절실하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 <‘시대의 등불’ 신영복 선생을 보내며>에서 “선생은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의 야욕을 현실화하기 시작한 때부터 그 뒤를 이은 신군부가 강압 통치 끝에 민주항쟁 앞에 물러설 때까지 꼬박 2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 기나긴 고통과 억압의 생활을 그는 희망으로 승화시켰다. 분노와 좌절로 가라앉을 수 있었던 하루하루를 성찰과 공부, 깨달음으로 채워 마침내 새 출발의 ‘작은 등불’을 그려냈다”고 평가했다.
고 신영복 교수는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숙명여대 경제학과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교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복역한 지 20년 20일 만인 1988년 8월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그는 출소 후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했으며 2006년 정년퇴임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의 엽서’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청구회 추억’ ‘변방을 찾아서’ ‘느티아래 강의실’(공저), ‘신영복-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등의 책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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