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대통령이 지방기자 월급 걱정까지
살인적인 저임금 지속하는 사주들의 빗나간 상술 막아야
"건전한 언론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급료를 줘야한다" 이건 언론운동단체나 언론사노동조합의 요구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무회의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이다.
연합뉴스의 보도는 지난 22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기자월급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일부 지방언론사의 실정을 정확히 파악해 대책을 세워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한다.이날 국무회의에서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은 '정기간행물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 에 대한 제안설명을 했다. 이 과정에서 진념 기획예산처장관은 "일부 지역에서 신문사가 기자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아 지방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일간신문 등록기준에 기자들에게 최소한의 봉급을 줘야한다는 기준을 넣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박 장관이 국제언론계의 비판 가능성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는 이견을 보이자 김 대통령의 그같은 지시가 나왔다는 것이다.
국무회의가 지방신문사 기자들의 '정상적인 임금 대책'을 세워야 하는 상황, 이건 아무래도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이야말로 지방신문사와 기자들의 현주소를 이해하는데서, 그리고 어떤 처방이 필요한가를 따져보는데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먼저 진념 장관의 발언에는 비록 '일부'라는 제한을 달고 있긴 하지만 지방신문사와 기자들에 대한 비하와 모욕을 담고 있다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아 지방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건 무슨 뜻인가. 월급을 못 받는 기자들이 기업을 괴롭히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고, 신문구독이나 광고 게재를 강요하고 있다는 암시이다. 지역이나 신문사를 특정하지 않은 채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되레 지방신문사 기자 일반에 대한 인식이 왜곡돼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월급을 제대로 못 받는 상황에서도 기자로서의 책무를 망각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대다수 지방신문사의 기자들에 대한 결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 장관의 제안에는 일정정도 현실을 반영하는 부분이 있다. 비정상적인 급여를 받는 지방신문사 기자들의 일탈 가능성은 상존하기 마련이고, 그런 점에서 월급 기준제시를 고려하자는 말은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오죽했으면 이런 방법까지'라는 생각을하게되는것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광주지역의 신문사노조와 언론운동단체들은 그런 방법이라도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모은 적이 있다. 광주지역 지방신문사 기자들의 임금이 최소한의 생활비에도 못미치는 수준이고, 이 때문에 언론기능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정상적인 경쟁이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지역신문시장의 난맥상을 벗어나게 하자는 숨은 의미도 담고 있었다.
한국경제가 IMF 관리체제로 접어들기 전인 97년 10월말을 기준으로 했을 때 98년 광주지역 신문기자의 급여는 대략 50%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집계된다. 이것도 몇몇 제대로 된(?) 신문사의 경우이고 일부에서는 5년차 기자가 월 50-60만원을 받거나 아예 몇 달씩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99년 들어서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쪽에서는 97년 급여의 70-80%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지만 다른쪽에서는 더 악화돼 5년차 기자의 월급이 40-50만원에 그치고 있다.
광주에 지방신문사가 유독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신문사의 수가 많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보다 많은 매체가 제기능을 할 수 있다면 구독자 입장에서도 사회적으로도 문제될 게 없다. 오히려 언론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월급을 제대로 줄 수 없는 신문사가 발행하는 신문의 지면구성에서 파행이 불가피하고 이것이 또다른 부조리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김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근로기준법이나 노동관계법에 (최저 임금) 관련 조항이 있지 않느냐"면서 "노동력 착취나 부당노동행위가 있으면 당연히 허가를 취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장관도 "문제가 생길 경우 검찰과 경찰이 단속하고 있는데 법으로 최소 임금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을 보였다. 옳은 판단이다. 정부가 언론사의 임금기준을 법으로 규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임금의 수준과 상관없이 언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시도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간섭'이라는 오해가능성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김 대통령의 말대로 '임금착취'나 '부당노동행위'가 발견됐을 때 엄격한 법 집행을 하면 된다. 그래서 월급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지방신문사의 부조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시민사회단체나 정부가 언론의 사회적 기능수행을견인한다는차원에서 필요하다면 규범적인 의미의 임금기준을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살인적인 저임금'을 지급하면서도 신문 발행을 계속함으로써 빗나간 사익을 챙기려는 일부 지방신문사 사주들의 일탈을 막는 일이다. 신문과 기자를 도구화함으로써 언론기능을 왜곡하고 공익에 반하여 부당이득을 얻으려는 시도를 철저히 차단해야 하는 것이다. 대신 지방신문사의 경영을 호전시키기는 것이 언론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사회적 규범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지원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고려해볼 일이다. 신문사가 나름대로 기업성을 유지할 수 없다면 존재하기 어렵고, 현재 대부분 지방신문사들이 극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안은 검토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신문사들이 정상화 길을 모색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난립한 지방신문이 사회문제를 일으키도록 방치하는 것보다는 일정한 기준에 따라 선별 지원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기업에 대한 지원방안이 마련될 수 있는 것처럼 지역언론 정상화를 위해 지방신문사의 경영지원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민형배(전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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