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보도국 간부들 기자협회장 압박

세월호 청문회 보도 의견 개진에 "편집권 침해" 반발

KBS 기자협회장이 보도국 편집회의에서 한 발언을 문제 삼아 보도국 간부들이 집단 성명을 냈다. ‘KBS 방송편성 규약’에 명시된 기자협회장의 의견 개진에 대해 “압력이고 명백한 편집권 침해”라는 보도국 간부들의 이례적인 성명은 고대영 사장이 수 차례 밝힌 편성규약 개정 방침과 맞물려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편성규약 무력화의 신호탄”이라고 비판했다.  


▲KBS '뉴스9'은 세월호 특조위 청문회 관련 보도 소식을 3일 동안 단 2건의 단신으로 처리했다. 사진은 지난 14일 '뉴스9' 25번째 꼭지 간추린 단신 중 일부 갈무리.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에 따르면 지난 16일 KBS보도국 간부 등이 참석한 아침 편집회의에서 이병도 기자협회장은 “세월호 청문회 마지막 날인 만큼 마무리하는 보도를 하는 게 어떤가”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가 진행 중이던 14, 15일 KBS ‘뉴스 9’이 관련 소식을 25번째 꼭지 단신 하나로 처리하면서 언론시민단체의 비판이 나오던 터였다.


이 같은 제안에 정지환 보도국장은 “아이템에 대한 기자협회장의 발언은 부장들에게 압박으로 비춰질 수 있고, 따라서 편집권 침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협회장이 “편집권을 존중한다. 참고해달라는 의견 개진일 뿐”이라고 했지만 보도국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새노조는 17일 성명을 통해 ‘편집권 침해’라는 사측의 주장을 비판하며 “‘편성규약’ 무력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새노조는 “평기자 대표인 기자협회장의 편집회의에서의 의견 제기는 방송법에 따라 제정되고 단체협약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편성규약’에 권한이 명시돼 있는 법적 정당성을 갖는 공식적인 행위”라며 “사측은 ‘방송법’은 물론 ‘편성규약’에서도 언급조차 되지 않는 ‘편집권’이라는 정체불명의 개념을 내세워 기자협회장의 정당한 의견 제기를 막겠다고 겁박하고 나선 것”이라 지적했다.

새노조가 근거로 든 ‘KBS방송 편성규약’ 제6조와 제15조는 관련 내용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근거해 운영되는 보도위원회 운영세칙은 “보도본부내 뉴스 기획/편집회의에 평기자 대표가 참여한다. 평기자 대표는 편집회의 이외에 뉴스 최종 편집과정에서 실무자들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제기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편성규약 시행세칙이 제정된 당시 보도본부장과 기자협회장은 이 내용에 공식 서명을 했었다.

특히 새노조가 우려를 드러낸 부분은 이 같은 사태가 고대영 사장이 선임과정에서부터 누차 언급했던 편성규약 개정 강행을 위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고대영 사장은 지난 11월 사장선임 정국 마지막 절차인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공정보도 의지를 묻는 야권의원들의 질의에 “방송법에 규정된 편성규약을 영국 BBC의 공정성 가이드라인 수준으로 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고 사장은 2003년 KBS사장과 노동조합·기자협회 등이 합의해 제정한 편성규약을 사측이 주도해 개정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드러냈다. 실무자 대표와 이에 대한 논의를 하겠냐는 질문에 “편성규약을 개정할 당시 방송법에 하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법적으로 제3자 규정이 있는데 노조는 제3자에 해당한다”, “방송사 제작 지휘체계상 노조는 대상이 아니다”, “BBC도 노조와 (편성규약 개정을) 합의하지 않는다”는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를 두고 당시 언론계 안팎에서는 “노조의 참여를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BBC’와 ‘공정성’을 끌어오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지환 보도국장 등 보도국 간부 18명은 이날 오후 사내게시판에 새노조의 비판에 대한 반박문을 올리고 “기자협회장의 행위는 의견제기가 아니라 압력이었고, 그런 만큼 명백한 편집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기자협회장의 세월호 보도 발언에 대해 “해당 취재부서장은 2명의 기자를 청문회장에 보내 취재하고 있으며 기존에 보도된 내용 이상의 새로운 팩트가 나올 경우 메인뉴스 아이템으로 발제하겠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기자협회장은 거듭 청문회 마지막 날인만큼 9시뉴스에 보도하는 것이 좋겠다고 요구하였다”면서 “기자협회장은 단순한 의견제시고 제안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편집회의 참석자들 모두가 부담스런 압력으로 인식하였다”고 했다.


이어 “기자협회이든 노조이든, 외부 권력기관이든 그 누구도 편집과 관련해 사전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편집권 침해이며 부당하다는 것”이라며 “헌법이 보장하고 있고 방송법이 지향하는 언론자유, 방송제작의 자유는 제작진의 편집권을 존중하는 기본적인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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