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려해도 휴가 못 가는데, 금전 보상도 없어

<지역신문사 연차휴가 실태>
만성적 인력난에 눈치보기 급급
회사 휴가사용촉진제 뒤로 숨어

설이나 추석 등으로 회사가 쉴 경우 연차휴가일수에서 제한다. 소진하지 못한 유급휴가일에 대한 연차수당은 없다. 그나마도 눈치를 보면서 휴가원을 내야 한다. 강원도 지역일간지 강원일보사 기자들의 휴가 현실에 대해 한 기자가 토로한 내용들이다. 그는 “연차일수에서 4~5일이 꼬박꼬박 깎이는 셈인데 그마저도 다 못 쓰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휴가일수가 많은 부장급 이상은 연말인데도 절반 정도밖에 못 쓰기도 한다”며 “이에 대한 보상도 없어 불만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든 상황이 괜찮다고 해도 (인력이 부족해) 동료들에게 미안하니 선뜻 (휴가를) 가겠다고 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사측 관계자는 “구성원들의 동의 과정을 거쳤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한 취업규칙 개정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말 ABC협회가 공개한 유료부수 인증에서 전국 지역일간지 106개사 중 다섯 번째로 많은 부수를 기록한 지역언론사 기자들이 연차휴가를 두고 겪는 현실의 단면이다.


본보가 한국ABC협회 부수인증 조사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지역일간지(전체 106개사) 18개사를 지역별로 구분해 연차휴가 사용현황을 파악한 결과 경기일보, 인천일보, 매일신문, 전남일보, 전북일보, 무등일보, 강원일보, 강원도민일보, 대전일보, 충청투데이, 한라일보, 제민일보 등 12개사가 사용치 못한 연차휴가에 대한 수당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언론사는 휴가사용촉진제에 따른 ‘연차휴가 무조건 소진 원칙’을 기본으로 휴가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잔여 유급휴가에 대한 수당 미지급의 근거로 삼고 있다. 촉진제는 연차유급휴가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법으로 권장하는 것으로, 사측의 휴가 독려 등 조치에도 노동자가 휴가를 소진하지 않을 경우 회사의 금전보상의무가 면제된다.


이는 이들 지역신문사의 기자들에겐 개인별 연차휴가일수가 자연스레 의무휴가일수가 되고 있다는 의미다. 전국 주요 일간지·방송사 등의 연차휴가현황을 파악한 본보 지난 7월1일자 보도에서 언론사들의 평균 의무휴가일수가 12.2일이었고, 1년 중 80% 이상 출근한 노동자가 최초로 받는 연차휴가가 15일이란 점을 감안하면 지역신문사 기자들은 연간 최소 3일 분 이상의 연차휴가수당을 못 받는 셈이 된다.


문제는 촉진제가 잔여 휴가에 대한 보상 미지급의 근거는 되지만 정작 ‘휴가를 쓰는’ 사유가 되지는 못한다는 데 있다.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는 지역신문사 기자들의 현실에서 휴가를 가라는 사측의 말 뿐인 독려는 책임회피란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번 조사는 각 지역별 대표 신문사라 할 수 있는 곳을 대상으로 이뤄진 만큼 나머지 지역 언론사 기자들의 휴가 상황은 더욱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족한 인력 때문에 연차휴가를 소진하지 못하는 지역신문사 기자들이 휴가사용촉진제 시행으로 연차수당까지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중앙 일간지와 방송사 등에 비해 열악한 처우다. 사진은 취재 중인 기자들의 모습.(뉴시스)

경인일보 한 기자는 “다행히도 휴가는 거의 다 가는 분위기지만 인력문제는 당연히 있다. 회사는 가라고 하는데 동료들 눈치를 본다. 특히 경찰서 같은 곳을 담당하는 막내기자들은 주말에 하루 정도씩 쉬라고 챙겨주는 정도다. 우리는 그나마 낫지만 지역에선 훨씬 열악한 곳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장영석 언론노조 노무사는 “결국 추가 인력이 필요한 것인데 인원을 늘리지 않고 알아서 휴가를 가라는 것”이라며 “인원이 부족해 (연차휴가) 미사용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 수당을 주는 등 보상을 하는 것이 맞다. 경영상 부담이 된다면 연차휴가 중 50%는 촉진제를 시행하고 나머지 범위 내에서 휴가사용·보상을 하는 등 노사 간 합의를 통해 합리적인 선을 찾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여건 속에서도 일부 지역신문사에서는 연차휴가 소진을 적극 독려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영상의 이유로 연차수당 지급을 못한다면 실질적으로 최대한 휴가를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일보 한 기자는 “4~5년 전까지는 잘 안 이뤄지다가 이젠 미리 결재만 받으면 원하는 대로 다 쓸 수 있는 상황”이라며 “노사 협의 후 첫 해에는 많이들 눈치를 봤다. 하지만 수당을 못 주는 대신 연말에라도 다 소진토록 했고, 연차사용 시 콘도이용권을 주는 등의 과정을 거치며 연차휴가를 사용하는 게 당연해졌다”고 전했다.


이혜영 중원노무법인 노무사는 “단지 촉진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쉴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 제도가 마련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사업주는 휴가자의 ‘휴가’ 사실을 알리는 등 적극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며 “노조가 있는 경우는 덜하지만 노조가 없는 30인 미만의 사업장은 노사협의회 의무설치가 되지 않아 이와 관련해 사측과 얘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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