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 취재…검찰은 진실 공개할까
[현장을 달리는 기자들] 현직 검사 '접대 의혹' 보도-울산MBC 최지호 기자
추석 연휴를 앞두고 걸려온 한 통의 제보전화. “현직 검사 2명이 필리핀에서 향응과 접대를 받는 자리에 동석했다”고 말한 제보자는 모든 정황을 설명할 수 있으니 뉴스가치를 판단해 달라고 했다. ‘특정인, 특정집단을 겨냥한 악의적인 제보는 아닐까?’, ‘언론을 활용하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검사들이 설마 휴가까지 써가며 그랬을까?’ 이런저런 물음표들은 제보내용을 하나씩 확인해 나가는 과정에서 느낌표(!)로 바뀌었다.
우선 접대를 제공한 의혹을 받고 있는 기업체 대표는 울산지역에서 대규모 폐기물업체를 운영하며 개인과 법인 모두 활발한 사회공헌활동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은 전화 한 통이면 충분했다. “필리핀에서 (검사들) 만나서 공(골프) 몇 번 치고 술 한 잔 한 게 전부다”라던 그는 “뭐 문제 될 게 있느냐”며 기자에게 오히려 되물었다. 30대 검사들과 50대 남성의 해외여행, 하다못해 흔한 학연이나 지연 등으로 얽힌 사이도 아닌 그들의 필리핀 일정. “그래 문제될 것이 없는 지 좀 더 확인해 보자. 해당 검사들의 입에서는 무슨 말이 나올까”.
검사들과 접촉하는 것은 평소 다른 취재 때도 그렇지만, 비포장도로를 돌고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역시나 늦은 오후 무렵에서야 돌아온 검찰 측 답변은 ‘1명은 외교부 파견 중, 1명은 부재 중.’ 하지만 검사 2명의 필리핀 체류 기간과 휴가를 낸 날짜가 겹치고, 울산지검 재직 당시 환경사건을 담당했던 점, 제보자가 두 달 전 대검찰청 감찰본부에 투서를 접수해 해당 검사들에 대한 내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의혹을 제기하기 충분한 팩트였다.
▲지난 9월30일 MBC ‘뉴스투데이’에서 최지호 기자의 <현직 검사 접대 의혹> 리포트가 방송됐다. 이날 뉴스가 나간 이후 다른 매체들은 다음날(1일)까지 후속 보도를 이어갔다. (MBC 제공)
결국 9월30일자에 ‘현직 검사 접대 의혹’ 리포트가 나가게 됐고 서울에서도 보도가 나가며 파장을 일으켰다. 많은 매체들은 뉴스를 재생산해냈고 추가 취재가 거듭 이뤄졌다. 결국 다음날 검찰은 ‘빠른 시일 내 감찰 결과를 밝히겠다’는 신속한 답을 내놓으며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다만, 해외에서 일어난 일이라 증거를 모으기 어렵고, 제보자와 기업체 대표, 해당 검사들을 수차례 불러 사실여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업무관련성, 부적절한 처신 정도에 따라 징계수위를 결정하겠다고 한 검찰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 대목이다. 범죄를 수사하고 공소를 제기하며 재판을 집행하는 조직, 기소권을 단독 유지하며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그들은 과연 접대성 해외여행 사실을 인정하고 진실을 공개할까.
수시로 걸려오는 제보전화. 사소한 불편사항을 지적하며 “왜 해결이 안 되느냐, 뉴스로 내보내 달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라 ‘뉴스가 되겠다, 안되겠다’를 서둘러 결정하는데 익숙해 있던 기자에게 이번 일은 다양한 제보자들의 힘을 새삼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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