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아파트까지 가압류…대전일보 사태의 전말

지난해 9월부터 구성원과 불화…노조위원장 대기발령·검찰 고소
노조 전임자들 부당 전보하고 밖으로는 언론 소임 자화자찬
출입처 콘텐츠로 화보집 제작…노조, 출입처 강매 비판하자
명예훼손·금전적 손해 입었다며 전·현직 노조간부에 손배소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대전일보 갈등이 1년을 넘겼지만 사태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대전일보는 최근 전·현직 노조간부 9명에게 5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사측이 자사 기자들을 상대로 소송까지 벌인 이례적인 사태에 언론계는 참담해하고 있다. 기자협회보는 대전일보 갈등의 시작부터 전개 과정, 현재 상황 등을 짚어봤다.

송영훈 한국기자협회 대전일보 지회장은 추석 즈음 자신 명의의 아파트를 매각하려다 경악했다. 자신의 집에 5천만원의 가압류가 걸린 것이었다. 채권자는 자신이 11년째 재직 중인 대전일보였다. 송 지회장은 “아파트를 팔기 위해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은 뒤 우연히 가압류 사실을 알게 됐다”며 “아파트는 상속받은 것으로 명의는 저에게 있지만 집안의 재산이다. 이번 일로 가족들이 받는 고통이 큰데, 특히 어머니께서 크게 놀라셨다”고 했다.


기자를 고소하는 등 구성원과 갈등을 빚은 대전일보 사측이 지난달 전·현직 노조간부 10명에게 5억원의 손해배상·가압류를 청구했다. 사측의 끝없는 강공 드라이브에 구성원들은 좌절하고 있고, 65년 역사의 대전일보의 위상도 덩달아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1년여간 지속돼온 갈등은 대전일보 내부뿐 아니라 지역 언론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임금인상 소급분으로 시작된 갈등
첫 갈등은 노사가 임금·단체협약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해 발생했다. 지난해 3월 새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된 장길문 사진부 기자는 그해 4월부터 사측과 임단협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후 5개월간 진행된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사측이 노조와 약속한 임금인상 소급분 지급을 지키지 않자 노조는 총회를 열어 전국언론노조에 임단협 교섭권 위임을 논의했다.


그러자 사측은 장 위원장에게 5년 전 사진기사를 문제 삼아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다. 해당 기사는 2010년 8월31일자 1면과 6면에 보도된 소쩍새 사진이다. 사측은 이 사진을 장 기자가 직접 찍지 않았다면서 ‘정당한 정보수집’을 어겼다고 판단했다.


▲대전일보 노조가 지난 13일 대전일보 사옥 앞에서 전·현직 노조원들에게 5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한 사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당시 장 위원장은 기자협회보(2014년 9월19일자)에서 “1면 사진은 제가 찍었고 6면은 현장 풀을 통해 받은 것이다. 당시 장소가 협소하고 새의 특성상 가까이 접근할 수 없어 사진담당 공무원과 현장 풀을 구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상대방과 의견을 공유했고 회사에도 다 보고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같은 날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장 풀은 기자들끼리 구성하는 것이지 구청 공보담당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공공연하게 (사진을) 교환하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기자들은 사측이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임단협은 수개월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사측은 경위서 제출요구뿐 아니라 장 기자를 뒷조사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기자협회 대전일보지회는 사측의 행태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회의 성명발표 이틀 뒤 사측은 장 위원장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당시 사측은 기자협회보(2014년 9월24일)에서 장 기자의 대기발령은 임금협상 등 노사관계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 기자가 오랜 시간 광범위하게 사진을 도용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고, 소쩍새 기사 등 여러 장의 사진 도용이 확인돼 인사조치 했다는 것이다.


장 위원장의 대기발령 이후 노사 갈등은 본격화됐다. 사측은 대기발령 조치 20여 일 후 장 위원장을 사진 도용·차용 및 위·변조에 따른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뒤이어 장 위원장은 충남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부당 대기발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접수했다. 두 달 뒤 이 신청이 받아들여져 지노위는 장 위원장의 원직 복귀를 명령했다.


해를 넘겨서도 노사는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더욱이 사측은 노조위원장뿐 아니라 올해 1월1일자로 노조 집행부의 전보 인사까지 단행하며 기자들의 반발을 샀다. 본사 편집국에 근무하던 강은선 기자(노조 총무부장)를 천안아산취재본부로, 최정 기자(노조 선전차장)를 충남취재본부, 세종취재본부장인 김형규 부국장을 제작국 윤전부로 발령 낸 것이다. 사측은 순환근무의 일환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노조는 보복인사라며 반발했다. 특히 노조는 김형규 부국장이 충남지노위에 사측의 의도와 다른 진술서를 냈다가 부당인사의 대상이 됐다고 주장했다.


장 위원장은 지노위의 명령으로 2015년 1월22일 편집국 편집부 사진담당(1월1일자로 사진부 폐지)으로 복귀했지만, 카메라나 컴퓨터 등의 취재장비를 지급받지 못했다. 이어 2월2일 비편집국인 문화사업국 문화행사부로 전출됐다. 노조는 “노조의 결속력을 무너뜨리려는 의도를 가진 회사의 노조 흔들기”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며칠 뒤인 2월12일 대전일보는 지령 2만호를 맞아 “지역 대표 신문에 부여된 사회공기로서의 소임과 책무를 더없이 무겁게 인식한다”고 발표했다.

화보집 판매 부진 이유로 손배소 제기
기자 고소, 대기발령, 전보 인사 등으로 압박하던 대전일보는 급기야 구성원들에게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했다.
대전일보는 매년 20만원 상당의 자료집 또는 화보집을 제작해 판매해왔다. 지난 5월말에도 충청의 숲 50여곳을 선정해 엮은 화보책자 발간 계획을 발표했다. 이때 대전일보는 주요 관공서에 사진 및 기사 자료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5월31일 “(사측은) 출입처 콘텐츠로 제작한 자료를 다시 기자들을 시켜 출입처에 강매하는 행태를 저지를 것”이라고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사측이 노조 전·현직 간부들에게 손배소를 제기한 이유는 화보집 때문이다. 노조의 각종 성명으로 대전일보가 심각한 명예훼손을 입어 물적 손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올해 6월 발간 예정이던 화보집 제작 중단, 지난해 만든 화보집 판매 부진으로 모두 4억원의 피해를 봤다고 사측은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장 위원장은 “화보집 비판 성명을 올해 5월 말에 발표했는데, 어떻게 지난해 판매 부진과 올해 제작 중단을 성명 탓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또 화보집을 만들지 말자고 한 것이 아니라 출입처 대신 자사 콘텐츠로 제작하자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측은 이 손해를 보전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전·현직 노조간부 10명에게 5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송 지회장의 아파트에 대한 5천만원의 가압류가 결정된 것도 이에 따른 것이었다.
기자협회보는 손배소송 등과 관련해 대전일보 사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지역언론 저널리즘 위축 우려”
사측의 강도 높은 노조 탄압이 만 1년을 넘기면서 노조는 점차 동력을 잃고 있다.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자 노조 내부에서도 이견이 커지는 상황이다. 올해 노조를 탈퇴한 조합원만 10여명에 이른다. 현재 노조원은 20여명이다.


대전일보 A기자는 “올해 들어 조합원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많이 지쳤고 침체된 분위기”라며 “대기발령, 타 지역 전보에 이어 이미 퇴사한 기자들에게까지 소송이 이어지다보니 두려워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남아 있는 조합원들끼리 더욱 뭉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대전지역 언론사 한 기자는 “사측이 해도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사 기자들을 보듬어 주지는 못할망정 한결같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기자들을 상대로 소송까지 거는 게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대전일보 B기자는 “회사의 행태가 부끄럽다. 한편으론 노사가 돌이키지 못할 만큼 너무 와버린 느낌도 든다”며 “최근엔 같은 회사 기자들과 술자리를 갖는 것도 괜히 눈치를 보게 된다. 노사간 중재자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역 원로들이 중재역할을 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무산됐다. 이 움직임에 대해 노조측은 찬성했으나 사측이 합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 위원장은 “노조위원장으로서 조합원들을 위해 임금인상에 따른 소급분을 적용해달라고 요구하다가 이렇게 된 것”이라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회사에 다니고 싶은 이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되지만, 지금 우리가 무너지면 기자로서 언론사로서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대전일보는 오로지 개인의 것이 아니다. 관공서에서 협찬·광고를 받고 국가에서도 지원을 받는다. 결국 대전일보는 시민들이 먹여 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지속한다면 대전일보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게 지금 가장 두렵다”고 했다.


이기동 대전 민언련 사무국장은 “대전일보 노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마지막 남은 지역 언론의 저널리즘이 위축될 수도 있는 위기상황이다. 현재 지역 일간지의 노조는 대전일보가 유일하다”며 “지역사회의 전반적인 대응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모여 여러 시민단체와 공동대책위를 조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사무국장은 “사측이 가지고 있는 사고에 변화가 없으면 이 갈등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며 “공대위는 사측의 행태를 규탄하기보다 태도변화를 이끌기 위해 구성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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