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랄까. 회사에서 있었던 답답하고 억울했던 일을 넋두리하듯 풀어놓던 중이었다. 그러다 “너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에 말문이 막혔다. 지금은 뉴스타파에서 일하고 있는 심인보 기자의 말이다.
말문이 막힌 건 비겁한 내 모습이 떠올라서다. 왜 난 ‘비상식적’인 지시에 곧바로 대들지 못하고 뒤에서만 욕을 하는가? 왜 난 ‘비합리적’인 보도에 항변하던 동료 기자를 선뜻 편들지 않다가 만신창이가 된 뒤에야 그를 위하는 척 하는 걸까? 설혹, “이러니까 안 돼!”라며 먼저 소통을 포기한 쪽은 내가 아닐까?
심인보 기자는 내 수습기자 시절 바이스였다. 당시 기자 생활을 막 시작했던 나와 동기들에게 ‘심바’(‘심 바’이스)는 기자로서의 사명을 이야기 하는 몇 안 되는 선배 중 하나였다. “네 기사에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은 어떤 방식의 ‘갈굼’보다도 엄한 취재와 보도의 기준이 됐다.
2012년 대선 때 이른바 ‘십알단(새누리당 편향 불법 선거운동 단체)’의 활동 현장을 고발한 보도, 4대강 검증 탐사보도, 그리고 이 같은 보도들이 방송되기까지 회사를 설득했던 지난한 과정을 직접 보거나 전해 들으며 어렴풋하게나 그렸던 진짜 기자의 모습을 눈앞에서 봤다. 그런 그가 “너에게도 책임이 있다”라고 이야기 하니 아플 수밖에.
2년 전 지방 근무를 앞두고 육아휴직 중이던 ‘심바’를 찾아갔다. 늘 그렇듯 진지한 표정으로 더 진지한 조언을 하던 ‘심바’에게 나는 “1년 뒤 지방에서 돌아왔을 때, 바이스가 회사에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심바’는 내 희망사항과 관련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헤어지기 직전 책 한 권을 선물로 줬다.
<리영희 평전>. 책 맨 앞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직장인’으로 안주하고 싶을 때마다 리영희 선생 생각하면서 멀리, 높이 바라보기를 부탁드립니다. -심인보-”
‘직장인’으로 살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하지만, 온 몸으로 그렇게 살아내는지 몰라 오늘도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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