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보호와 생명존중 사회를 위한 언론의 역할을 되새기는 ‘2015 사건기자 세미나’가 지난 4~5일 제주 칼 호텔에서 열렸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중앙자살예방센터, 한국기자협회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해 매년 개최되는 이날 사건기자 세미나에는 사회부 사건기자 등 60여명이 참석했다.
제1주제 ‘피의자 조사과정에서의 인권과 언론보도’에는 심상돈 국가인권위원회 정책교육국장이 좌장으로 참여했다. 이어 김향규 국가인권위 인권교육운영팀장, 정의석 국가인권위 홍보협력과 사무관,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교육콘텐츠팀장(변호사)이 발제자로 나섰다.
김향규 팀장은 ‘군 사건을 통해서 본 피의자 인권보장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 모색’ 발표를 통해 “상설기구가 아닌 군사법원은 보통군사법원-관할관-고등군사법원-대법원에 이어지는 사실상 4심제”라고 지적하면서 “국회에서 도입이 결정된 군옴부즈만을 통해 군 인권에 대한 일관된 조사·교육 제도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정의석 사무관은 인권을 침해하는 언론보도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정 사무관은 “기사에서 살색(살구색), 동성연애(동성애), 결손가정(한부모가정), 윤락(성매매), 용병(외국인 선수) 등 인권 침해 단어나 ‘꿀 먹은 벙어리’, ‘눈뜬장님’ 등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강화하는 속담 사용이 여전히 많다”며 “취재 과정이나 취재원의 동의 과정에서도 인권 보호가 필요하며, 자살과 성폭행 보도는 가능한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주장했다.
국가기관이나 수사기관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쓰는 언론 관행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양재규 팀장은 “법원이 그동안 국가기관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기사화해 오보를 낸 언론사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내렸던 데 반해 최근에는 '충분한 취재를 하지 않았다'고 판결하기도 했다”며 “보도자료 내용 중에는 잘못된 내용이 있을 수 있다. 충분한 취재를 통해 확실한 내용만 기사에 담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어진 두 번째 세션에서는 사실상 자살을 부추기는 언론보도의 실태와 올바른 자살보도에 대한 내용이 다뤄졌다.
유현재 서강대 교수(중앙자살예방센터 운영위원)는 “우리나라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으로 수년째 OECD 1위를 지키고 있는데 이는 자살재해지역으로 선포해도 될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며 “자살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언론보도뿐 아니라 드라마·웹툰·인터넷에서도 자살 콘텐츠가 넘쳐난다. 언론은 자살률을 높이는 변수들을 하나하나 지워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수종 언론중재위원회 기사심의팀장은 “지난해 언론중재위 시정권고 현황을 보면 자살보도가 24.2%로 가장 높았다”며 “언론보도에서 자살자의 성·나이·직장·주소 등 신원 공개가 자살자와 가족들의 사생활·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자살에 사용된 약명을 공개하거나 자살 미화 등도 지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좌장을 맡은 홍진표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은 “자살시도자를 5년간 추적 조사해보니 97% 정도가 잘 살아가고 있었다”며 “자살충동 순간만 넘기면 잘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이 언론에서 보도된 자살 방법으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언론의 책임을 강조했다.
인권보호 보도·자살 보도에 대한 사건기자들과 발제자들의 질의·응답도 쏟아졌다.
한 기자는 “공인의 범위가 어디까지며 공인의 범죄를 보도하는 시점과 그 내용을 어느 정도까지 인용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양재규 변호사는 “대체로 공인은 선출직·고위 공무원이나 연예인 등으로 규정되는데 그 범위가 법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지금까지도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범죄보도에선 검찰의 기소단계에서 실명보도는 적절하다고 보는데 이 또한 범죄가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혐의를 단정해서 보도해선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잘못된 자살보도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자살보도 강제규정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며 “이를 지키지 않은 언론사에 직접적인 불이익 등을 가해야 언론도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고 변화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박종률 한국기자협회 회장은 “오늘 세미나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유념해 기사화한다면 더 나은 언론이 될 것이라 믿는다”며 “특히 사건기자들이기 때문에 부정·불의한 것에 대해서는 더 날카로운 시각으로 보는 동시에 사회적 약자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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