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사람 김원봉'과 의열단…항일운동 '잃어버린 흔적을 찾아서'

[현장을 달리는 기자들] 경남 항일독립운동 취재-김두천 경남도민일보 기자

▲김두천 경남도민일보 기자

“아. 괜히 아이디어 하나 냈다가 옴팡 뒤집어 써버렸네예”, “아이고. 이게 다 니 복으로 돌아올끼다. 잘 해봐라. 고마.”
지난 3월 기획을 시작하는 들머리. 아이템을 내놨을 당시 부장과 나눈 농반진반 지청구다. 지난해 11월 초. 편집국장 명의 내부 공지가 페이스북 편집국 그룹에 올랐다.


‘내년도 연중기획 아이템과 부서별 차별화 전략 콘텐츠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뒤 오전 데스크 회의를 마친 부장이 부서 카카오톡 그룹에 아이디어를 하나씩 내놓으라 했다.


문득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내 한 줄 제목을 적어냈다. ‘경남 독립운동 발자취를 더듬다’. 스스로 참 진부한 제목이다 싶었는데 이게 통할 줄이야.


삼일절에 맞춰 기획을 시작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대강 얼개를 세우고 구성 고민하는 사이 진부했던 제목도 세련(?)된 타이틀로 바뀌었다.


‘해방 70주년 기획-경남 항일독립운동, 현장을 기억하다’는 이렇게 시작됐다.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 상당수 항일독립운동 사적이 멸실되거나 보존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장소가 한말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이 일어났거나 그 중심에 섰던 독립운동가가 살아 숨쉬던 역사 현장이라는 것을 알리는 작은 표지마저 없는 곳이 많습니다, 이들 현장을 찾아내 보존하고 후대에 알릴 수 있는 다양하면서도 구체적인 제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현재를 조명해 앞으로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이 작업의 시작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사람은 안다. 답사를 다니면 고대, 중세, 근세 유적은 보존과 복원이 매우 잘 되어있으나 근·현대 역사 현장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말이다. 근·현대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 현장이 허허벌판이거나 옛 모습은 다 허물어지고 새로 지어진 신식 건축물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한말 일제강점기 치욕스런 역사 속에 오욕을 뒤로하고 일본과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은 삶의 현실 앞에 허상으로만 남아버린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이렇듯 한말부터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의 현장이었으나 이제 그 흔적이 모두 사라진 장소에 이 역사를 기억하는 작은 비석 하나라도 세우자는 것이 기획 의도였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동아대 사학과에 용역을 줘 펴낸 ‘부산·경남지역 항일독립운동사적조사 보고’를 교과서로 삼았다. 이와 함께 각 지역 시사(市史)나 군지(郡誌)를 참고했다. 현장은 그 지역 향토사학자와 함께 가 내용에 깊이를 더하고자 했다. 현지 지역민으로부터 날것으로 된 옛 이야기도 들었다.


▲밀양 내이동 해천 일대. 밀양 출신 의열단원들은 주로 해천을 중심으로 한 내일동, 내이동 일대에 살았다. 사진 속 해천변 오른쪽, 벤치가 있는 소공원 앞 신축 건물 좌우로 각각 김원봉 선생과 윤세주 열사 생가가 있었다. (글·사진 김두천 경남도민일보기자)

지난 2월27일 진해를 시작으로 진주, 하동, 양산, 거제, 남해, 마산, 고성, 통영, 사천, 김해, 합천, 함안, 창녕, 밀양, 산청 항일독립운동 현장을 차례로 찾았다.


예상했듯이 항일독립운동 현장은 늘 아쉬움을 남겼다. 예컨대 진해 웅천초등학교와 진주 경남과학기술대학교는 각각 지역 선각자와 유림들이 힘을 모아 세운 학교였다.


이곳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민족 교육을 받고 일본에 저항하는 힘을 길렀다. 이 학교들은 그럼에도 학교 연원을 일제하 일본이 근대 교육을 장악한 시기부터로 두고 있다. 심지어 이를 기념하는 전시물까지 만들어 후대에 알리는 우를 범하고도 있었다.


3·1항일독립운동 현장은 대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터였다. 당시 장터는 지금도 대부분 전통시장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시장은 지금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간이다. 이에 시장 한 켠 유휴공간에 작은 표지판을 세워 이곳이 일본 폭정에 항거한 민중의 울분이 표출된 곳임을 알리면 어떨까 싶었다.


또한 마산과 진해, 거제에는 일제가 식민통치와 탄압에 쓰려 만든 건축물(또는 조형물)이 많다. 마산헌병분견소, 진해만요새사령부, 거제 송진포 진해만 임시근거지 방비대 부속 등이다. 이 건조물들은 사실상 방치되고 있을 뿐 뚜렷한 보존과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식민지 역사의 아픔을 기억하고 이를 극복하는 현대적인 공간으로 재구성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경남지역 내 여러 시·군중에서도 특히 밀양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현장을 취재해보니 김원봉을 비롯한 이 지역 출신 의열단원 생가와 그들이 수학한 학교, 일제에 항거한 자리 모두 한 동네에 오밀조밀 붙어 있음을 확인하면서다.

이들이 유년시절부터 함께 놀고 밥을 먹으면서 서로 결기를 다지고 항일의식을 북돋웠을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지난 8월18일 보도한 ‘밀양 의열단 역사지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 내용은 영화 ‘암살’의 흥행과 광복절 연휴 덕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많이 회자됐다.


영화 ‘암살’로 ‘밀양 사람 김원봉’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미디어도 온통 김원봉이 어떤 사람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이날 보도는 김원봉에 집중된 이목을 그가 아닌 밀양 출신 의열단원 전체에게로 나누는 계기가 됐을 거라 본다.


이 밖에도 지역의 울타리를 넘어 전국에서 모여들어 지리산권 일대에서 활동한 한말 구국 의병 모두를 기리는 비를 세우는 등 항일독립운동을 기억하는 각종 사업에 어떠한 주저함도 없는 하동의 예는 전국 모든 지자체의 본보기 될 만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들 한다. 단순하게 교과서처럼 글로 접하는 역사는 결코 머릿속에 오래남지 못한다. 지역마다 산재한 항일독립운동 현장에 옛 스토리를 알리고 이를 기억하는 다양하고도 세밀한 장치를 마련하는 것. 이것이 앞으로 국민들이 항일독립운동에서 얻는 역사적 교훈을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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