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일을 정리하고 직업을 바꾸려는 생각을 하고 계신 거 같네요. 마침 좋은 기회도 찾아온 거 같은데 그걸 잘 잡으시면 되지 않을까요?”
안 기자는 ‘점쟁이’다. 엄연한 5년차 기자로 강원도민일보 미디어국에서 디지털미디어와 사진영상팀 업무를 맡아왔다. 타로를 독학해 점을 보기 시작한 건 대학교에 입학한 직후였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 탓에 새로 친구들 사귀기가 어려웠단다. 그때 그가 선택한 돌파구가 바로 타로였으니 점쟁이 경력은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은 셈이다.
“타로를 한다고 하면 일단 사람들이 흥미를 가져요. 말문을 열고 자연스럽게 대화하기도 쉽고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타로 관련 책 몇 권을 빌리거나 사서 본 게 시작이었는데 벌써 그렇게 됐네요.”
그렇게 한두 명씩 점을 봐주다보니 입소문이 났단다. ‘용하다(?)’는 소문에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을 데려오고, 그 사람이 또 아는 이를 데려오는 일이 반복됐다. 본인도 이를 즐겨 마다하지 않았다. 고향인 속초에 내려갈 때면 일부러 해수욕장에 나가 ‘돗자리를 깔’ 정도였다.
신기한 일도 많이 겪었다. 한번은 신내림을 받았다는 점쟁이에게 점을 보러 갔다가 도리어 그에게 타로 점을 봐준 적도 있었다. 안 기자가 점을 본다는 걸 용케 알아채고 그가 자신의 점을 봐달라고 조른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안 기자에게는 타로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생겼다. 타로는 미래를 보는 예언이 아니라 ‘카운슬링’의 과정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타로카드 점은 메이저(22장)와 마이너카드(56장) 등 총 78장으로 구성된 1덱의 카드 중 의뢰자에게 무작위로 몇 장을 뽑도록 하고 고른 카드의 종류와 순서에 따라 점괘를 낸다. 이 일련의 과정은 의뢰자가 되도록 많은 질문을 꺼내도록 만들기 위한 요식행위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점을 보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는 그의 말에 곧장 수긍할 수 있었다.
“타로는 사실 매개일 뿐이에요. 연애, 직장, 건강문제 등은 굉장히 개인적인 부분이라 누구한테도 얘기하기 어렵잖아요. 일단 그걸 입 밖에 내는 것만으로도 후련해질 수 있거든요. 이때 의뢰자가 어떤 질문을 하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질문들에) 의뢰자의 고민도 답도 다 있거든요. 저는 그걸 열심히 듣고 제 의견을 들려주는 거죠.”
주변 사람들 중 일부는 ‘점쟁이’ 안 기자를 타박하기도 한다. 명색이 기자가 유치하고 비과학적인 타로 같은 걸 하고 있느냐는 핀잔이다. 하지만 안 기자는 타로를 통해 배운 게 너무나 많아 접을 생각이 없단다. 기자로서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역지사지의 자세로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준 것만으로도 타로는 그에게 타로 이상이다.
애인이 없다는 안 기자에게 마지막으로 짓궂은 질문을 하나 던져봤다. 그의 연애운은 어떨지. 잠시 고민하던 안 기자가 웃으며 말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질문이 중요해요. 전 요즘 외롭지 않고 일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당분간은 안 생기지 않을까요. 하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법이니까 또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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