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표 기호일보 기자의 또 다른 직업은 힙합가수다. 래퍼인 그는 2002년과 2006년 힙합그룹 ‘M.O.F(MIC Of FREE)’란 이름으로 힙합 앨범을 두 장이나 냈다. 지금도 틈 날 때마다 새로운 곡 작업을 하고 있다.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어디서든 공연도 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던 그는 중학생 무렵 국내 최초 랩으로만 이뤄졌던, 가수 김진표의 음반을 듣고 힙합을 접했다. 고등학생 때는 록음악에 빠져 드럼을 치기도 했다.
“90년대 당시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미국 힙합가수 2PAC, P.Diddy, DR.Dre 등의 음악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힙합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전 기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힙합 특유의 베이스 소리였다. ‘둥둥’거리는 이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니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사 쓰는 연습을 해오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대학진학 후였다.
“어렸을 때부터 한 동네에서 자라면서 함께 힙합에 빠져 있던 동네 형과 의기투합해 시작했습니다. 음악을 만들어줄 PD로 친한 동생을 끌어들이고 여성 보컬도 영입해 ‘M.O.F’라는 팀을 만들었죠. 2000년대 초반 힙합 전성기 속에서 다양한 동호회와 크루들이 생겨났고, 저희 팀도 자작곡을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기자는 힙합 외에도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나 스스로 위안을 얻고 싶을 때 시를 쓰곤 한다. 고1 때부터 문학동아리에서 시나 소설, 수필을 썼다. 동아리 회원들의 작품을 모아 문집을 만들기도 했다.
“보기와 달리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얘기를 듣는 이유도 문학에 빠져 있던 시절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쓴 것은 시라기보다 노래 가사에 가깝습니다. 시와 랩 가사 모두 운율(라임)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시를 가장해 노래 가사를 편하게 끄적이는 정도입니다.”
‘예술 감성’인 그가 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사회에 대한 관심 덕분이었다. “대부분의 기자들처럼 저 역시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조금이라도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었습니다. 지역언론사 기자가 되고 난 후 중앙에서 다루기 힘든 우리 동네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힙합은 전 기자의 생활 그 자체다. “힙합바지를 입고 CD플레이어를 든 채 거리를 누비던 시절도, 와이셔츠를 입고 한 손에 취재수첩을 들고 다니는 지금도 항상 힙합입니다. 처음 다짐했던 ‘작지만 꼭 필요한 기사를 쓰는 기자가 되자’는 마음에는 변함없습니다. 여전히 힙합을 사랑하면서 가장 낮은 곳에서 나오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기자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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