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BS제주방송은 2002년 5월 창사 후 13년간 전년흑자를 기록했다. 2011년, 2012년 연속 방송평가 1위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 프로그램 제작의 자율성이나 보도의 독립성은 보장되지 않았다. 수익이 안 되면 프로그램 제작은 엄두도 못 냈고, 제작된 프로그램과 뉴스 등도 경영진의 사적 이해관계로 인해 내보내지 못한 사례도 허다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태풍과 폭우를 뚫고 취재현장을 누비고 돌아와도 회사에는 씻고 쉴 곳이 없어 젖은 몸으로 하루를 살았고, 때론 밤을 새우며 방송을 제작하는 지하편집실에는 그 흔한 공기청정기 하나 없었다. 어느 여성조합원은 유산 후 3일 만에 출근을 했고, 임신을 해도 조근과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했다. 방송인으로서 제대로 된 방송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 노동자로서 기본 근로조건이 지켜지는 사업장에서 일하고픈 열망, 그런 기본적인 열망이 무시되는 현장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무기는 파업이었다.
지난 3월18일, 전국언론노동조합 JIBS제주방송지부는 ‘방송제작환경 개선, 근로여건 개선, 신사업 투명성 확보, 청주방송 임금수준 단계적 이행방안 마련’이란 명제를 걸고 사상초유의 전면파업을 단행했다. 단체협약 몇 조항, 임금협약 몇 %가 쟁점이 아닌 ‘울분의 13년’으로 상징되는 말 그대로 억압받아 온 지난 과거에 대한 울분의 표출이고 폭발이었다.
파업을 결행하면서 두려움도 적진 않았지만 그만큼 절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투쟁’, ‘동지’란 생소한 단어들이 일상이 되고 노동가요가 나도 모르게 흥얼거려질 때쯤 애초의 두려움은 용기로 바뀌고 절실함은 동력이 되어갔다. 부서 간, 선후배 간의 이기주의로 말 한번 못 건네던 동료들이 노동자란 이름으로 하나 되어 소통하기 시작하면서는 특별한 지침이 없어도 파업뉴스 등의 동영상을 스스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또한 도내 투쟁 사업장 연대활동, 지역사회 활동, 대도민 선전전은 물론 올레길 걷기, 추억의 봄 소풍 등은 회사 내에서 가져보지 못한 동료애를 더욱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
또 하나의 큰 힘은 전국언론사회와 지역사회의 연대였다. 회사 앞 연삼로의 앙상한 벚나무에 벚꽃이 피기 시작할 때쯤 도로변은 전국언론노동자들이 보내 온 성원의 현수막 물결로 가득 찼다. 30여개를 걸고 나니 더 이상 걸 곳이 없어 돌려보내기도 했을 정도다. 또한 전국언론단체는 물론 도내 정당, 노동단체,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지 성명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표됐고, 중반에는 제주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등 20여개 단체로 구성된 ‘JIBS 방송정상화와 언론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도민 대책위원회’가 출범해 제주도정과 정치권을 겨냥한 활동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말기에는 세계 140개국 미디어산업 종사자들이 가입된 UNI GLOBAL UNION(국제사무직노조) 미디어분과에서 JIBS 경영진에게 조속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항의 서한을 발송하기도 했다.
77일간의 투쟁의 결과는 당장 손에 쥐어진 결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파업의 초심을 잃지 말고 JIBS 구성원으로서 스스로 기본과 원칙을 지켜 나간다면 머지 않은 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투쟁의 깊이는 자신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으로 되돌아 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진정한 투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지난 77일간 보내주신 깊은 성원에 감사드리며 투쟁의 시간을 함께 한 55명의 자랑스러운 동지들에게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오늘밤에는 55명의 동지들이 각각 카메라를 들고, 마이크를 잡고, 스튜디오에서, 부조에서, 그렇게 자신만의 투쟁현장에서 웃음 가득한 모습, 그런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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