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와 언론
본격적인 선거의 해가 열렸다. 언론들은 여야의 대선 주자 연쇄 인터뷰는 물론, 당내 경선구도와 관련한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고 각당 예비주자들 역시 자신의 이미지와 자질 등을 부각시키기 위해 언론과의 접촉 빈도를 높이고 있다. 언론에 어떻게 투영되느냐가 일반 국민에 대한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만큼 언론과 대선 예비주자들과의 관계 역시 관심사가 되고 있다. 각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사표를 던진 9명의 주자들이 평소 기자들의 눈에 어떻게 비쳐지고 있으며 지난해 최대 이슈였던 언론사 세무조사 등과 관련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대선 주자들의 언론 관계’를 2회에 걸쳐 살펴본다.
■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최근 한나라당 출입기자들은 이회창 총재를 얘기할 때 “많이 달라졌다”고 평한다.
기자들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이 지난 97년 대선 당시와 비교할 때 많이 세련됐다는 얘기다. 이전엔 ‘썰렁’하기만 했던 농담도 자연스러워졌고 때론 기자들에게 세심히 배려하는 모습도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 이 총재가 연초 차장으로 승진한 모 언론사의 1진 출입기자에게 저녁 늦게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인사를 전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는 ‘딱딱하다’거나 ‘차갑다’는 그의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한 참모들의 조언도 있었겠지만, 이 총재 스스로의 노력이기도 하다는 게 기자들의 전언이다.
이런 변화의 결과인지는 모르나, 그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일화’ 역시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지난 97년 당시엔 이른바 ‘창자론’이니 ‘씨말리기론’으로 일컬어지는, 비판기사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 표현이 화제가 됐다면 올해 들어선 출입기자들과의 끈끈한 유대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5월 기자들이 함께한 회식 자리에서의 ‘무동 사건’은 물론, 보궐 선거 직후 열린 의원총회 “한식구” 발언, 그리고 11월 러시아 방문시 불거진 ‘수행기자 생일축하연’ 등이 그것이다.
언론정책과 관련해 최근까지도 뚜렷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97년 대선에서도 언론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보궐선거 이후 방송위원 선임시 대통령 추천 몫을 줄이는 방향으로 방송법 개정을 추진하다 돌연 입장을 바꿔‘정략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총재는 또 지난해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였던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해 줄곧 “언론탄압”이라며 대여 공세를 펴왔다. 이런 이 총재의 입장에 대해선 “언론자유에 대한 원칙적 입장표명”이란 평가와 “정략적 판단에 따른 정치공세”란 비판이 엇갈리고 있다.
■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
‘전직 대통령의 딸’이란 이미지에다 최근 ‘영남후보론’까지 가세하면서 후보경선 참여의사를 공언한 이후 부쩍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는 정치인이 바로 박근혜 부총재이다. 박 부총재 스스로도 이전까지는 언론과 일정한 거리를 둬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을 출입하는 한 기자는 “이전엔 기자들과 접촉 횟수도 적은 데다가 독신이고 사생활이 거의 알려지지 않아 어떨 땐 신비감마저 느낀다”고 말했다. 박 부총재가 육영수 여사 사망 이후 수년간 사실상의 ‘퍼스트 레이디’로서 언론의 조명을 받아 온 만큼 언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나름의 노하우가 있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그런 때문인지, 경선 참여선언 이후 그동안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던 삼성동 자택을 오는 17일 한나라당 출입 1진 기자들을 초대,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형식으로 공개한다고 한다. 박 부총재는 이에 앞서 지난 4일엔 대구지역 퇴직 언론인 30여명과 함께 모임을 갖는 등 중앙 언론사는 물론, 자신의 지지기반이라 판단하는 대구 경북지역 언론계 인사계 인사들도 꾸준히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부총재는 자신의 언론관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해 당론과는 사뭇 다른 견해를 밝혀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박 부총재는 지난해 2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밝힌 언론개혁 발언에 이어 (세무조사가) 일사천리로 진척되는 것에 대해 야당이 반발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는 “야당은 ‘세무조사를 중단하라’는 주장보다는 세무조사를 다른 쪽으로 이용하지 말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신문사도 하나의 사업이고 기업체이기 때문에, 세무조사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당론은 어폐가 있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 이인제 민주당 고문
이 고문은 언론을 통해 젊고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하지만 지난 97년 대선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모방했던기억이 강해 기자들 사이에선 “성공여부는 지켜봐야 한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 고문은 또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이미지 개선에도 노력하는 모습이다. 지난 1일 신년 인사차 이 고문의 자곡동 자택을 찾은 기자들에게 부인인 김은숙씨가 기자들이 미안함을 느낄 정도로 깍듯하게 예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고문은 김영삼 정부 노동부 장관 재임시절 개혁적 면모를 보이다가 97년 대선 당시엔 박정희 대통령을 모방하는 선거전력을 구사, 당시 언론으로부터 이미지 변신이 잦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 고문은 민주당 출입기자들 가운데 특히 지난 97년 대선 당시 국민신당을 출입했던 기자들과 관계가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전담 마크맨’에겐 생일날 케이크를 보내기도 하지만 특히, 국민신당 출입 경력기자들에게 더 각별하게 신경 쓴다는 게 한 민주당 출입기자의 전언이다.
언론개혁 문제와 관련해 이인제 고문은 “자율 원칙”을 강조하고 있으나 주변으로부터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지난 8월 수원에서 열린 국정홍보대회장에선 한 당원이 “이인제 위원은 언론개혁에 관해 침묵하지 말고 소신을 밝히라”고 소리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그의 태도에 대해 한 기자는 “이 고문으로선 주요 언론사들과 보수 계층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 고문은 또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언론으로부터 지난 97년 대선 당시 경선결과에 불복했다는 점을 지적 받고 있다. 경선 불복 문제는 최근까지도 인터뷰 등 그와 관련된 언론 보도의 주요 화제거리다.
■ 노무현 민주당 고문
기자들은 노 고문에 대해 소신이 강하며 솔직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대부분 정치인들이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선 우회적 어법을 선호하지만, 노 고문은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피력하면서 논쟁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연말엔 출입기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정치 현안 등을 놓고 실제 논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기자들 사이에선 “솔직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고집이 세다”, “너무 튄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그는 실제 지난 10월 당정쇄신 관련 발언과 11월 검찰총장 사퇴 발언으로 당 안팎에서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언론 문제와 관련한 그의 ‘소신’ 발언과 행동 역시 화제가 돼왔다.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인 지난해 2월 “언론과의 전쟁선포” 발언을 시작으로, 9월의 “조선일보의 이회창 총재 밀어주기” 발언, 그리고 최근 조선일보 인터뷰 거부 선언 등이 그것이다. 특히 노 고문은 조선일보 문제와 관련해선 비타협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사실 노 고문의 조선일보와의 ‘악연’은 그가 초선의원 시절 조선일보에서 해고된 한 지국장 문제에 관여한 직후 불거진 ‘요트 소유’ 보도 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처럼 여권 인사들조차 언론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해 회피하는 문제에 대해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에 대해선 언론개혁에 대한 남다른 의지와 소신을 갖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지만, 일부 기자들 사이에선 “젊은 세대와 개혁 지지층을 겨냥한 득표전술의 일환”이라는 애기도 나오고 있다.
한편, 노 고문에 대해선 연초 ‘미디어오늘’의 기자 대상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감으로 적합하다는 응답이 가장 높게(62.0%) 나오기도 했다. 노 고문은 특히 평기자, 그 가운데 입사 1∼3년차의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 지지를 많이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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