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의 덫'…방송사고에 속수무책

방심위 제재 12건…SBS 최다
일베 영상·이미지 파악 어려워
시간에 쫓긴 제작 관행이 문제

방송사들이 잇따른 ‘일베 방송사고’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극우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 사용자들이 특정인을 비하하고 자신들을 알리기 위해 변형시킨 이미지가 버젓이 전파를 타고 있는 것이다. 각사는 재발 방지책에 고심하고 있지만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심의 의결 현황에 따르면 방송사들이 지난 2013년부터 일베 관련 방송사고로 제재를 받은 건수는 총 12건이다. SBS가 4건, MBC가 3건, KBS와 YTN이 각각 2건, 채널A가 1건을 기록했다. 12건 중 9건이 보도·교양 부문이다. 


최근에도 지상파방송 3사에서 유사한 방송사고가 이어졌다. 지난 4월8일 KBS ‘이광용의 옐로우카드2’는 바이에른 무현(MUHYUN)으로 변형된 바이에른 뮌헨의 엠블럼을 사용해 질타를 받았고, 지난달 30일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일베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용어인 ‘MC무현’을 거꾸로 표기한 ‘현무CM’ 자막을 노출했다. 또 SBS ‘8뉴스’는 지난달 24일 리포트에서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의도로 만들어진 영상 효과음을 사용했다. 



특히 다섯 번째 일베 방송사고를 기록한 SBS에 질타가 컸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SBS 내에 일베는 없다는 것이 사실인가”라며 “노 전 대통령 추도식 다음날 화면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음악을 사용한 것이 실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사고 직후 사과의 뜻을 밝힌 SBS는 지난달 29일 보도국장과 시민사회부장 감봉 1개월, 사회부 데스크 근신 열흘, 해당 기자 감봉 2개월 등 중징계를 내렸다. 


방송사 관계자들은 일베 사용자가 아닌 이상 관련 이미지나 영상의 출처가 일베라는 점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방송화면에 보다 적합한 자료를 얻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다 일베의 ‘덫’에 걸리게 됐다는 설명이다. MBC 관계자는 “제작하는 입장에서 공식사이트에 있는 로고보다 더 화질이 좋은 것을 찾다보니 일베의 함정에 걸린 것”이라며 “이러한 방송사고를 어떤 방식으로 막을지 공식적인 지침은 없다. 최선을 다해 걸러내고 주의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송사들은 자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이다. SBS의 경우 로고만 모아놓은 별도의 라이브러리를 운영하고 있고, 최근 방송사고 이후에는 ‘출처나 생산자가 확인되지 않은 동영상은 쓰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기자들을 대상으로 취재규범을 숙지하도록 교육도 진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일베의 덫을 원천적으로 피해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방송사 한 기자는 “데이터베이스가 완벽히 구축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출처가 확실하더라도 의도적으로 그런 것들을 겨냥해 변형시키면 피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참 고민스럽다”며 “차라리 일베 회원이 있으면 알 수 있을텐데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진로 영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일베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의도에 따른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이고, 일베적 요소를 잘 모르는 기자들이 시간에 쫓겨 자료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는 것이 두 번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검증을 위한 내부 시스템이 마련돼야 하지만 이것이 너무 강조되면 사전검열의 우려가 있다. 기자들이 스스로 자료를 구축하면 좋은데 시간과 비용이 문제”라며 “그러나 짧은 시간에 큰 효율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는 ‘방송 안전사고’가 쉽게 발생하는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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