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 기간이었던 지난 14~17일. 부모들은 세월호 침몰 해역을 찾아 아이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광화문에서는 대규모 추모집회가 열렸고, 경찰은 경찰버스로 차벽을 쳤다. 긴박한 3일, 시사인은 자사 페이스북을 통해 현장의 ‘날 것’을 그대로 전했다. 이제 갓 입사한 김연희, 신한슬, 이상원 기자가 한 손에 스마트폰을 쥔 채 현장에 파견됐다. 이번 속보를 기획하고, 시시각각 날아드는 소식을 정리하는 건 고제규 기자의 몫이었다. 간략한 상황 설명과 함께 현장 사진, 동영상을 첨부한 속보가 67신에 달했다. 누리꾼의 반응은 뜨거웠다.
페이스북 속보는 시사인 기자들에게 낯설지 않은 포맷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처음으로 안산 분향소를 벗어나 KBS와 청와대로 향했던 지난해 5월8일,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속보를 내보낸 게 첫 시도였다. 이후 단원고 생존학생들의 도보순례에 이어 ‘세월호 참사 100일, 100시간의 기록’도 전했다. 고 기자는 세 번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월호 1주기 속보를 사전에 기획했다. 취재기자에게 각각 역할을 주고 카드뉴스나 지면기사도 적극 활용했다.
이번 속보에서 단연 돋보인 건 ‘독자 참여’였다. 전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추모 사진과 메시지가 답지했다. 고등학생 독자들은 이름 모를 친구를 위해, 해외 독자들은 참사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왔다. 고 기자는 일일이 감사의 댓글을 달았다. “광화문에 직접 나오진 않아도 누군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추모할 거라고 생각했죠. 속보 1신 때부터 추모 메시지를 달아달라고 요청했는데 독자들의 피드백이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집회 현장에서 세월호 특별판(시사인 제395호)을 무료 배포한 것도 ‘도우미’로 나선 독자들 덕분이었다. 또한 독자들은 ‘일일 통신원’을 자처해 전국 각지에서 추모집회 현장 소식을 전해왔다. 속보 하나에 댓글이 끊임없이 달렸다. 고 기자는 “스마트폰이라는 하드웨어, 페이스북이라는 플랫폼, 독자들의 열정이 더해지니 모두가 뉴스 생산자가 되었다”며 “그럴 일이 없어야겠지만 다음에 또 속보를 전하게 되면 그 때는 취재기자 없이도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세 명의 신입기자들은 세월호 1주기를 계기로 ‘현장 취재’를 확실히 경험하게 됐다. 수습기자라면 빼놓을 수 없는 현장인 장례식장보다 갑절은 어려운 취재였을 터. 사고 해역에 동행한 신한슬 기자는 유가족들이 마음 놓고 울 수 있도록 세월호 부표만을 촬영했지만 결국 1분을 넘기지 못했다. 부모들이 흐느끼는 소리만으로도 감정이 북받쳤기 때문이다. 집회 현장에 갔던 여기자들은 ‘거리를 두라’는 선배의 지시에도 경찰에 가깝게 접근하다 캡사이신 세례를 받았다. 그렇게 3박4일 동안 신입기자들은 선배들의 기대보다 더 많은 것을 듣고 마음에 새겼다.
“내 이름으로 나간 첫 기사, 첫 취재는 기자생활 내내 기억에 남는 법이죠. 부담도 있었고 걱정도 됐지만 이것이 신입기자를 투입한 이유였습니다. 후배들이 지속적으로 세월호에 관심을 갖고 진상규명에 도움이 되는 기사를 쓰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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