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정 급주행 홍준표 '성완종 리스트'에 기세 꺾여

[현장을 달리는 기자들]경남도민일보 이시우 기자

▲경남도민일보 이시우 기자

정확히 지난 13일 이후 풍경이다. 매일 오전 7시 30분 경남도청 앞 현관에는 도지사 집무실로 출근하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한 마디라도 더 듣고자 기자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꼭 대검 혹은 지검 앞에 유력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가 출두하는 상황을 취재하는 모습 같다.


경남도청 출입 기자들은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성완종 리스트’ 사건 관련 다른 보도매체를 온종일 뚫어질 듯 보면서 하루를 끝낸다.


기자가 출입하는 곳은 도청 옆 경남도의회다. 이곳 출입기자 대부분은 도의회와 함께 정당도 담당한다. 이렇게 아침 뻗치기로 따낸 홍 지사 발언을 두고 각 정당·시민사회단체 반응을 묻는 게 일상이 됐다.


격세지감. 얼마 전까지 경남도와 각 시·군 지원금을 중단시키며 전국 최초로 경남에서 학교 무상급식을 중단시켰을 때만 해도 홍 지사 얼굴은 승자의 그것이었다.


홍 지사는 최근 한 야권 도의원이 도정질문에서 도의회 본회의장에서 영화 예고편 감상한 것을 두고 “그래도 되느냐”고 따져 묻자 “하도 한 말 또 하고 해서 지루해서 주말에 영화 보려고 예고편 봤다. 제가 말씀 안 들은 것도 아니고 귀로는 다 들었다”며 참 당당하게 답했다.


자신만만. 홍 지사의 이 상징은 ‘성완종 리스트’ 사건 이후 초췌한 표정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다.
이미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홍 지사는 보수층 결집을 위해 늘 돌발적인 카드를 내밀고, 일정기간 혼란을 일으키고서 급주행하는 도청 행정력을 내세워 자신이 설정한 방향으로 상황을 재편한다.


지난 2013년 2월 말 갑작스럽게 진주의료원 폐업을 들고 나온 초기에는 폐업 이유를 부족한 경남도 재정이 문제라고 했다가 순식간에 진주의료원 노조를 ‘강성 노조’로 내몰며 ‘강성노조’ 대 ‘이에 맞서는 경남도’라는 대결 구도로 만들었다.


‘학교 무상급식 중단’도 마찬가지다. 홍 지사는 미국 독립전쟁 이념인 ‘대표 없이 과세 없다’에서 따온 ‘감사 없이 예산 없다’는 말을 남기고 도교육청에 특정감사 수용을 요구한다. 1991년 지방자치 부활 뒤 광역행정기관 간 감사를 한 사례는 한 차례도 없는 점을 내세운 도교육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예산 지원을 중단한다. 그리고 진보좌파의 무책임한 보편 복지 대 재정 상황을 고려한 선별 복지라는 단순 구도를 내세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5일 오전 도청 정문으로 출근하는 가운데 기자들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메모에 적힌 ‘홍준표 1억’의 전달자로 알려진 윤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뉴시스)

홍준표식 경남도정 백미는 다음부터다. 도 지원금 257억원 중단과 함께 도는 홍준표식 새로운 (선별) 복지 정책의 좌표를 제시하겠다며 급조된 서민자녀교육지원 사업을 신설한다. 도 예산만 아니라 도내 18개 시·군 학교 급식 지원 예산(386억원)마저 이 사업으로 전용하는 데 거의 성공한다. 그 결과 올해 경남도교육청은 자치단체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전국 유일 ‘0’이다.


이런 과정에서 도내 사회적 갈등 비용은 상당하다.
최근에는 사회보장법상 사회보장 제도 신설 때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규정을 어기고 경남도가 협의 전 서민자녀교육지원 사업을 시행하려고 하자 보건복지부가 경고성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도는 21일 사업을 강행했다.


폐업시킨 진주의료원 건물을 경남도청 서부청사(공공기관)로 용도 변경하려 하자 보건복지부가 협의를 거치지 않아 보조금관리법 위반이라고 했지만 경남도는 끝내 보건복지부를 굴복(?)시키고, 용도 변경했다. 해당 법률을 위반해도 처벌 규정이 없는 점을 십분 활용했다. 이런 모습을 접할 때마다 도내 기자들은 감탄(?)한다.
그 과정에서 도정 견제는 온데간데없는 경남도의회 위상 추락을 씁쓸히 보고 있다.


물론 도내 학부모와 시민사회단체는 학교 무상급식 지원 중단을 두고 최근 반발이 거세다. 최근 2주간 주말에는 도내 18개 시·군 중 11개 시·군에서 무상급식 중단에 항의하는 집회와 걷기대회를 했다. 14년차에 접어든 기자가 집회를 했다는 소식을 처음 접한 산청군 같은 곳에서도 집회를 했을 정도다.


진주의료원 폐업과 학교 무상급식 중단 사태를 겪으며 경남은 어쩌면 상식과 비상식 경계가 모호한 시공이 된 듯하다.
물론 늘 그렇듯 ‘또 다른 오늘’은 지금-여기의 대중 몫이다. 그들 손으로 경남의 또 다른 오늘이 가능할까?


문득 일본 나리타 신공항 건설 반대 투쟁을 그린 다큐영화 ‘산리츠카 7부작’에서 본 자막 한 구절이 떠오른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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