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벤처 '부적절한 관계' 그 실체는…

언론보도 주가 결정적 영향, 벤처는 언론을 먹고 자란다

수지김 살해사건의 피의자인 윤태식씨의 ‘패스21’ 불법로비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과정에서 언론인들이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벤처기업과 언론의 유착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벤-언 유착’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벤처 열풍이 불붙기 시작한 지난 99년 이후 주식 제공과 홍보성 기사를 매개로 한 벤처기업과 언론의 은밀한 거래는 공공연한 비밀이 돼왔으며 소문 또한 무성했던 게 사실이다. “벤처는 언론을 먹고 자란다”는 얘기마저 나오기도 했다. 윤태식씨 불법로비 사건을 계기로 그 유착의 실체를 드러낸 벤처와 언론의 관계문제를 조명해 본다.





지난 2000년 2월 한 방송사 기자는 채권 추심업의 문제점을 취재하기 위해 한 벤처기업을 찾았다가 예상외의 일을 겪어야 했다. 취재가 끝날 무렵 업체로부터 “주식을 액면가로 줄테니 기사를 줄여줄 수 없겠느냐”는 제의를 받은 것이다. 업체 사장은 한발 더 나아가 “어차피 코스닥에 등록하려면 주식 분산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20∼30%는 기자들이나 이해 관계자들에게 주는 게 관행”이라며 설득하기까지 했다. 이 기자는 제의를 거절하긴 했지만 내심 갈등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벤처가 IMF시대 한국경제의 견인차로 일컬어지며 ‘대박’ 행진을 이어갈 때인 99년 이후 벤처 업계를 취재하던 기자들 사이에선 이런 직·간접적인 체험담이 적지 않게 회자되곤 했다.

반대로 벤처기업이 기자들의 공세에 시달리는 사례로 있었다. 정보통신분야의 벤처기업인 ㅊ사의 한 관계자는 “2000년 초 우리 회사 얘기가 한 경제지에 실린 뒤 몇몇 다른 언론사 기자들로부터 ‘우리도 보도를 해 줄테니 주식을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며 “그 기자들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듯이 태연했다”고 말했다.

그럼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근본적으로는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전부인 벤처기업의 속성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기술의 우수성이나 사업 아이템의 차별성을 사회적으로 ‘공인’ 받아야 성장할 수 있는데 이때 언론보도가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벤처기업이 언론에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런 점에서 ‘주식 제공’은 벤처기업 입장에선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벤처업계의 한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선 신문 광고를 내는 것보다 기사로 보도되는 게 기업의 신뢰도면이나 홍보면에서 더 효과가 큰 게 사실”이라며 “비용이비슷하다면 홍보효과가 더 나은 쪽을 선택하는게 당연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신기술 발표회나 사업 설명회가 언론에 제대로만 보도될 경우 당초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은 투자자를 끌어 모을 수 있음은 물론, 주가를 올리는 데도 유리하다는 것이다. 언론의 공신력을 활용하겠다는 계산인 셈이다.

그래서 웬만한 벤처기업들은 언론과의 연결 고리를 찾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한때 벤처기업에 몸담다가 다시 언론계로 돌아온 한 언론사 간부는 “언론 홍보의 효과가 크다는 사실을 절감한 벤처기업들 가운데서 인력 부족 현상을 겪으면서도 언론홍보팀을 두는 게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일간지 경제부장은 “지난 2, 3년간 벤처기업을 전담하는 홍보대행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문제는 언론과 벤처기업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결국 자기 발을 묶는 족쇄로 작용한다는 데 있다. 어떤 경로로든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가격 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때문에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해당 업체에 유리한 기사를 작성하거나 또는 담당기자에게 청탁이나 민원을 넣게 되는 것이다. 한 방송사 기자는 벤처기업과 관련, 선배나 동료들이 담당기자에게 “잘 다뤄주라”는 ‘민원’을 하는 것을 여러번 목격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언론과 유착된 특정 벤처기업에 대한 편애가 그 기업과 경쟁을 하고 있는 다수의 유망한 벤처기업의 몰락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정화된 사고의 틀을 깨는 파격, 모험과 도전이 생명인 벤처기업의 특성상 공정한 경쟁은 생명이다. 아이디어의 신선함과 기술의 차별성이라는 벤처기업의 특성이 무시되고 ‘검은 거래’가 우선된다면 벤처기업의 미래는 없다. 언론은 그것을 감시하는 파수꾼으로 만족해야 한다. 김동원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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