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현장 취재기자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장기적·일상적으로 피해자 가족들을 취재해온 기자들 중 일부는 참사 1주기가 다가오는 지금도 지속적인 우울감이나 불면증을 겪고 있다.
숙명여대 배정근(미디어학부), 하은혜(아동복지학과·임상심리 전문가), 이미나(미디어학부) 교수로 구성된 연구팀은 세월호 참사 한 달 뒤인 지난해 5월부터 기자들의 심리적 외상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다. 지난해 9월에는 세월호 참사를 취재한 기자 270명 중 45.9%(124명)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겪고 있다는 1차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동일한 27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1월 2차 후속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 63명 중 약 25%는 6개월 이상 PTSD 증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장기적으로 지속될 경우 만성적 PTSD로 판단한다. 또한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구체적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자 10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도 진행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다음달 15일 한국언론학회에서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그러나 기자들은 상담이나 치료에 소극적이다. 기자는 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초적 직업관’, 취재 대상과 자신을 감정적으로 분리할 수 있다고 믿는 ‘객관주의적 직업관’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상담을 받아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도 퍼져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의 취재환경은 심리적 외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배정근 교수는 “수백명의 취재진과 이로 인한 취재경쟁, 잇단 오보와 언론을 향한 불신, 취재거부 등이 트라우마로 직결됐다”고 분석했다. 날로 악화되는 저널리즘 환경과 낙후된 취재관행은 사회적 부작용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기자 개인의 심리적 고통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통해 100여명의 기자들이 심리 치료를 받았다. 개별 언론사 차원에서 소속 기자들에게 치료 혜택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기자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특히 호남권 언론인의 경우 지난 한 해 동안 세월호 참사, 장성요양병원 화재, 담양 펜션 화재 등 유사한 취재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 배 교수는 “열악한 근무조건에 있는 지역 기자들의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며 “전문적 심리상담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잠시 휴식을 취할 시간은 줘야 한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언론인들도 직무상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출발점”이라며 “기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언론계 전반의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자신의 경험을 선배나 동료와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상호지원’도 트라우마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배 교수는 “기자들의 트라우마는 저널리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악영향을 주게 된다”면서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는 기자들이 심리적으로 건강할 때 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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