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정직’이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없는 사실을 만들어서 허위 보도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거에 MBC에서 분명히 지켜왔던 원칙이 무너졌기에 우리는 파업을 했다. 이번 재판은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문제다.”
19일 서울고등법원 312호 재판정. 2012년 170일의 MBC 파업으로 인한 업무방해혐의 항소심 결심공판이 열렸다. 파업 도중 해고된 이용마 기자는 최후 진술에서 “재판 과정에서 사측 관계자들은 증인으로 나와 파업을 예견하지 못했다고 잡아뗐다. 거짓된 과정을 무수히 확인했고, 너무나 당황스러웠다”며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재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무방해혐의 항소심은 오는 4월 21일 오후 2시 선고된다.
“지금까지의 기억을 갖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가 목격하고 확인한 불공정한 기사를 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도 파업에 나섰던 조합원들을 대표해 최후진술에서 심경을 밝혔다. 정 전 위원장은 “700명의 조합원들이 170일간 월급을 받지 못하고 파업했다”며 “위원장으로 굉장히 가슴 아팠다. 이후 해고, 손해배상, 가압류, 형사재판 등 어느새 3년이 지났다”고 말했다.
정 전 위원장은 “저희는 파업이 합법인지 불법인지 판결할 수 있는 힘도, 권한도 없다”며 “하지만 월급을 받고 있는 회사에서 낸 보도가 공정한지 불공정한지 스스로 판단해야 하고 시청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냥 나선 파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업무방해혐의 재판에서는 2012년 파업에 대한 ‘전격성’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다. 검찰은 2012년 파업이 기습적이고 전격적으로 이뤄져 사측이 사전에 예측할 수 없어 손실이 컸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변호인 측은 당시 잇따른 불공정 보도 논란과 사측의 공정방송협의회 거부 등으로 MBC 안팎에서 파업을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특히 이날 변호인 측은 이를 입증할 근거로 당시 노사관계를 담당했던 사측 간부의 진술을 새롭게 공개했다. 2011년 노조가 인사쇄신과 공정보도를 거듭 요구했지만 김재철 사장은 단체협약으로 보장된 공정방송협의회를 거부하고 불참하면서 파국이 시작됐고, 2012년 1월 기자총회가 열리고 노조 파업으로 이어지면서 파업을 충분히 예측했다는 증언이다.
신인수 변호사(법무법인 소헌)는 “당시 노사 관계를 담당했던 고민철 경영본부장은 김재철 사장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하고 파업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인사조치가 필요하다고 권유했다고 증언했다”며 “보도부문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다는 것은 고민철 본부장을 비롯해 회사 구성원들 대다수가 예측하고 우려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사측 간부도 이렇게 말하는데 검찰은 무슨 근거로 예측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가. 이것으로 (파업의)전격성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장재훈 전 정책교섭국장도 최후진술에서 “제가 교섭국장으로 매일 상대하던 사측 파트너가 고민철 본부장이었다”며 “당시 회사가 노조에서 파업을 할 것이란 걸 알고 있다면서 ‘많이 준비하고 있다’ ‘조심해야 한다’는 등 설득하고 막으려 했다. 회사가 파업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전격적이고 기습적으로 파업을 했다는 검찰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장 전 국장은 “재판을 하면서 재판장님이 사측 증인들에게 몇 차례 질문을 했다. 사측은 정상화를 위해 무슨 노력을 했냐고. 하지만 전혀 하는 게 없다면서 아직 더 정리해야 한다는 논조였다”며 “헌법에 보장돼 있고 정당하다고 배운 파업을 한번 했다는 이유만으로 저를 비롯한 700~800명의 조합원들이 소외되고 분리되고 고통 받고 있다. 3년 전 구속영장부터 검찰의 집요한 시간이 계속되고 있지만 모든 민사와 형사 재판에서 정당하다는 사법부 판결의 힘 하나로 회사의 분리와 탄압에서 견디고 있다. 현명하고 정의로운 판결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당초 업무방해혐의 재판은 지난해 12월 말 선고될 예정이었지만 검찰의 변론기일 재개 요청으로 해를 넘겼다. 검찰은 이날 1심 때와 동일하게 정영하 전 위원장에 징역 3년, 강지웅 전 사무처장과 이용마 전 홍보국장, 장재훈 전 정책교섭국장, 김민식 전 편성제작부위원장에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검찰 측은 “기소가 노조 탄압을 위한 정치적 행위라고 하지만 가장 정치적인 것은 바로 피고인들”이라며 “파업의 목적은 김재철 사장 퇴진이었다. 방송의 공정성 보장을 위한 정당한 파업이라고 주장하지만 김 사장이 퇴진했다면 과연 파업을 계속 했겠는가. 당시 총선을 앞두고 정치성에 맞는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파업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정성 판단의 궁극적인 주체는 시청자”라며 “역대 최장 파업으로 회사 운영상 혼란을 가져왔고 광고수입 감소와 대체인력 투입 등 547억원의 손실을 끼쳤다. 어떤 언론사라도 6개월간 회사를 마비시켰다면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변호인은 당시 MBC의 현실과 구성원들의 자괴감을 설명했다. 일상적인 아이템 검열과 사찰로 한미FTA, 4대강 등 민감한 이슈는 보도할 수 없었고, 보도국과 시사교양국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던 기자와 PD들은 쫓겨났다. 라디오 간판 진행자들은 낙인 찍혀 도중하차했고 손석희, 최일구, 박혜진 등 대표 앵커와 아나운서들은 어느새 MBC를 떠나갔다.
신인수 변호사는 “170일간 이뤄졌던 파업에서 사측 간부 단 한명도 폭행이나 협박 등 상해를 입은 사람이 없다. 방송 송출이 중단되거나 전파를 방해한 것도 단 한 차례도 없다”며 “이처럼 평화롭게 진행된 파업은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신 변호사는 “MBC의 주인이 시청자라는 것은 다툼의 여지가 없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뤄진 1심에서 바로 주권자이자 MBC의 주인인 시청자가 무죄로 판단했다”며 “검찰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공영방송 MBC는 더더욱 침몰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재산이자 공영방송 MBC는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는가. 주인(국민)의 선택을 재판부가 현명하고 심도 있게 판단해 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서울남부지법은 지난해 5월 2012년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의 170일 파업을 이끈 정영하 전 위원장 등 노조 집행부 5명에 대한 업무방해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치러진 1심에서 7명의 국민 배심원들의 평결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당시 재판부는 △불법 파업에 따른 업무방해 △현관문 봉쇄ㆍ로비 사용으로 인한 업무방해 △정보통신망법 상 비밀 누설 혐의에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로비 기둥ㆍ현판 등 재물손괴를 일부 인정해 정 전 위원장에 벌금 100만원, 나머지 4명에게는 벌금 50만원을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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