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언론이 바뀐다-불붙은 내부시스템 변화
지금 TV는 '뉴스의 질'전쟁 흥미보다 심층성·중요성 강조
시청률 연연하지 않고 정석으로 승부 태세
"이제 시청률 대신 질로 붙자."
KBS, MBC 9시대 뉴스가 새로운 대결을 시작했다. KBS는 지난해 22일부터, MBC는 31일부터 변신을 시작했다. 양대 공영방송이 내건 변화의 목표는 같다. 보도의 심층화, 국제화. 이젠 기사의 흥미성보다 의미성, 중요성을 따지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22일을 변신일로 선포한 KBS 뉴스9는 이미 눈에 띄게 변모했다. 우선 다루는 뉴스건수가 크게 줄었다. 뉴스 변신을 시작한 후 일주일 간 뉴스를 분석해보니 평일 뉴스는 하루 평균 25건, 주말 뉴스는 21.5건이었다. KBS 지회(지회장 박선규)가 지난 8월 조사했을 때 평일 33.2건, 주말 24.5건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평일엔 8건, 주말엔 3건 이상이 줄어들었다. 대신 심층보도는 두세 배 늘었다. 고발물인 '현장추적', 심층보도물인 '집중취재'를 매일 배치하고 있다. 국제뉴스 코너인 '오늘의 세계'는 해외토픽성 아이템을 과감히 버리고 주요사건, 주요이슈 중심으로 꾸려지고 있다. 정치부장, 경제부장이 직접 리포트하거나 스튜디오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또 간부들이 정쟁 위주의 국회 비판, 군필가산점 위헌판결의 의미 등 현안을 직접 짚어주는 '뉴스의 눈' 코너를 신설했다.
12월 초 '새천년 뉴스 대혁신'을 선언한 MBC 뉴스데스크도 탈피를 시작했다. 1분 10초 안팎의 비슷한 길이로 재단되던 뉴스들이 중요도와 속보성에 따라 간부급 기자들의 스튜디오 출연, 현장 생중계 등 다양한 형식과 길이로 배치되고 있다. 성탄절, 대한항공 화물기 추락 등 그날의 이슈는 과감히 집중 조명한다.
홍성규 KBS 보도국장은 "뉴스아이템 선별기준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단편적 사건이나 선정적인 아이템을 과감히 배제하고 중요성과 사회적 의미를 기준으로 뉴스를 배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 국장은 자료화면을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방송뉴스들이 서해교전 때 해군 함포사격 훈련장면을 내보내 실제보다 불안을 증폭시켰다"며 "이런 엉터리 뉴스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엄기영 MBC 보도국장은 "시청률의 얄팍한 속임수를 벗어날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한 국장"이라며 "후배들에게 기자가 될 때 쓰고 싶었던 기사를 쓰라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엄 국장은 "그동안 방송뉴스들이 시청률 높은 뉴스로 시청자를 길들이고 스스로 그것을 보며쾌감을즐겨왔다"며 "이제 방송기자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의 심층화를 위해 조직적 뒷받침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엄 국장은 "당장은 사전 제작개념으로 심층뉴스를 제작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뉴스AD, PD 등 지원시스템을 확보할 생각"이라며 "현실적으로는 부장은 CP, 차장은 PD 개념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KBS 역시 새로 구성될 보도국 뉴스기획단에서 뉴스PD, 조사기자 도입을 재검토할 예정이다. 기자 출신인 박권상 KBS 사장, 노성대 MBC 사장 역시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양사 기자들이 거는 기대는 크다. 이인용 MBC 뉴스데스크 앵커는 양대 공영방송 뉴스의 시청률 경쟁을 '잔디구장 옆 진흙탕에서 구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민영방송에 비해 뉴스의 질적 경쟁을 추구하기 좋은 여건임에도 시청률 경쟁을 계속 해왔다는 것이다. 사실 KBS 뉴스9는 광고방송이 없고 MBC 뉴스데스크는 불황 때조차 광고방송이 꽉 찰 정도로 고정광고주 수요가 많아 시청률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구조다. 그는 "누군가 먼저 잔디구장으로 올라가야 이 진흙탕 싸움이 끝난다"고 강조했다. 한 KBS 기자는 "홍두표 전 KBS 사장 독촉과 민영방송 출범으로 불 붙었던 시청률 지향적인 경쟁에 대해 그동안 양사 기자 모두 반성하고 있었지만 자존심 다툼에 가속이 붙어 지금까지 그만 두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존의 백화점 나열식 뉴스형태는 이미 오랜 세월 가꿔진 것인데 반해 지금의 '심층뉴스'들은 아직 거칠고 지루하다. 기자들이 익숙하고 세련된 것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까. "KBS, MBC 두 메이저방송사가 나서면 달라질 수도 있다"는 한 SBS 기자처럼 타 언론사 기자들은 양대 공영방송사의 변신시도를 깊은 관심으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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