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슈팀에서 원전 이슈 취재를 맡게 되면서 마음속에 갖고 있던 부채감을 덜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살고 있는 곳은 고리원전으로부터 10㎞에 못 미치는 곳이다. 신고리 3·4호기 가동에 대비해 76만5000V 초고압 송전탑이 마을 앞산을 병풍처럼 둘러쳐 지나가는 것을 두고 반대 운동이 벌어질 때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히 지나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2년이 지난 지금 아름답던 능선 위에 연한 하늘색을 띠며 흉물스럽게 솟은 송전탑은 신고리 3·4호기 가동과 송전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흘러가는 전기는 밀양을 거쳐 최대 전력 수요처인 수도권으로 향한다. 밀양에선 익히 알려진대로 그저 안전하게 조용히 먹고 살고 싶다며 촌로들이 수년째 온몸을 던져 집회와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발전소가 전국에 고루 분산돼 있었다면 고민하지 않아도 될 문제였다.
고리 1호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40년이 다 되어가는 원전을 다시 10년 더 가동하겠다는 것이 원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입장이다. 안전성을 의심할만한 징후가 여러 건 지적되었음에도 표결로 월성 1호기 수명 연장을 밀어붙인 원안위의 결정에서 보다시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진정 ‘안전’과 ‘규제’를 책임지는 조직인지 의심을 받고 있다.
여당 대표와 정부 관계자의 고리 1호기 폐로방침 발언 이후 고리 1호기는 폐로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지만 환경단체들은 경계의 시선을 늦추지 않고 있다. 오는 6월18일까지 한수원이 고리 1호기 수명 연장 신청을 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정부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고리 1호기를 제외하도록 마지막 압박에 시민의 힘을 모을 계획이다.
원전 이슈는 수명 연장뿐 아니라 방사성 물질로 인한 인체 피해 우려로 번지고 있다. 지난해 갑상선암 소송을 제기한 주민이 한수원을 상대로 승소했고, 국내 첫 해수담수화 실증시설의 상수도 공급 계획을 놓고는 바닷물에 녹아 있는 방사성 물질을 걸러낼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노동자들이 임금을 올려달라며 하는 파업이나, 기피시설인 원전 입지 주변 주민들의 반대집회를 언론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행동으로 규정한다. 물론 그런 집회와 파업이 권리와 이익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기자 스스로가 월급쟁이 언론 노동자라는 사실, 기자가 살고 있는 지역이 결코 원전으로부터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은 종종 잊는다. 그들이 나일 수 있고, 내가 저 자리에 앉아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 그들의 이익이 나의 이익을 신장시킬 수 있다는 점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평양을 건너 태풍이 된다는 세상이다. 이런 점을 깨닫더라도, 어디에 살고 있는지에 따라 또 인식이 나뉠 수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기자들은 수도권 규제 완화나 동해와 남해 해안에 분포한 원전 문제에 대해 지역에 사는 기자들에 비해 온도차가 있을 수 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도 목소리가 작은 피해자(혹은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원전과 거리가 먼 곳에 사는 수도권 언론인과 시민들도 원전의 위험성과 지속가능한 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높여나갔으면 좋겠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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