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지난 16일 오후 1시 남한산성 도립공원 경내인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금복리 소재의 한 야산 중턱.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진 쌀쌀한 날씨인데도 대부분 백발이 성성한 20여명의 사람들은 인적이 드물어 낙엽이 쌓인 산기슭을 올라가고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의무겠지요.”
한 노신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자신이 산을 오르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지난 61년 5·16 군부 쿠데타 세력에게 간첩혐의로 사형당해 올해로 40주기를 맞는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묘소를 향하고 있었다. 대부분 조 사장 생존시 친분을 나눠왔던 이들이다.
20분쯤 오르자 여느 무명고지 양지바른 둔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묘역이 나타났다. 조 사장의 본관과 이름을 새긴 비석에 ‘민족일보 사장’이란 글발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지도 모를 만큼 평범해 보였다. 그 평범에 아연한 때문일까. 추모식 참석자들은 말없이 묘소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조 사장의 친동생인 용준 선생이 추모식 순서를 진행했다.
지난 8일 학술회의를 열어 조 사장 명예회복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던 민족일보사건 진상규명위원회 김자동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여러분이 추모식에 참석해주신 것을 보며 고인의 정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며 “내년엔 조 사장의 명예회복을 위한 법적인 투쟁을 본격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분을 쌓았던 지인들이 그를 추억하는 순서도 가졌다.
조 사장에게 “논설위원으로 함께 일하자”는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던 한국일보 논설위원 출신 주종환 민족화합운동연합 의장은 “지난해 6·15공동선언에 이어 올해 8·15행사 참여 등을 지켜보면서 40여년 전 평화통일을 주장했던 조 사장이 민족의 선각자임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4·19직후 민자통 활동을 했던 전창일 통일연대 고문은 61년 당시 2대 악법(데모규제법·반공특별법) 제정반대 운동 당시 언론계를 대표한 조 사장이 한 집회에서 연설했던 모습을 회고하기도 했다.
그 뒤 참석자들은 차례로 고인에게 예를 표하고 술잔을 올렸으며, 서로에게 음복을 권했다.
이렇게 30여분 동안 간략히 진행된 추모식을 지켜보던 한 현직 언론인은 “60~70대인 조사장의 친지들이 노구를 이끌고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그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이제는 기자협회나언론노조 등 후배 언론인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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