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빈부격차 문제는 그동안 많이 제기됐지만 고착화되고 일상화되면서 어느새 둔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죠. 빈부격차의 민낯을 조명하고 다시 한 번 물음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빈부격차를 어쩔 수 없는 일로 포기하고 있진 않은지, 일종의 충격요법이었죠.”
지난 6일 서울신문 1면에는 서울역 건너편 노상에서 주저앉아 구걸하고 있는 걸인 행색의 기자 사진 한 장이 실렸다.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이 내놓은 상위 1% 부유층과 하위 9.1% 절대빈곤층의 생활상을 분야별로 비교하는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특별기획팀 유대근 기자와 송수연 기자가 각각 걸인과 특급호텔 일일체험에 나선 ‘기자, 거지 되다’와 ‘기자, 부자 되다’ 기사로 그 문을 열었다.
영하 9도까지 떨어진 지난달 16일 유 기자는 12시간 걸인으로 변신했다. 3주간 기른 수염과 남루한 행색, 분장까지 비슷한 구색을 갖췄다. 오전 6시 무료배식으로 하루를 시작해 오전 4시간 동안 서대문과 마포 일대 교회와 성당 7곳을 돌아 받은 돈은 3300원. 10km 남짓 걸은 결과였다. 사전 취재로 만난 노숙인 단체 관계자가 “돈 몇 푼 받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 것”이라던 말이 떠올랐다. “노숙인들은 밥보다는 담배 한 갑, 소주 한 병을 얻고자 구걸하죠. 시간을 놓치면 동전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4km를 30분 안에 걸었어요. 주어진 환경에서 생활하는 보통의 생계처럼 고달팠죠.”
단 하루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팀에서도 자칫 기자의 기만으로 비춰질까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감정’을 충실히 느껴보자는 취지였다. ‘빈부 리포트’의 알맹이를 보여주기 위해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점도 고려됐다. “결론이나 해설을 붙이지 않은 것은 있는 ‘현실’을 전한다는 원칙”이라며 “빈부격차 의제를 환기시키는 하나의 장치로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자들의 반응도 이어지고 있다. 12일에는 ‘출산ㆍ육아’편과 함께 6일 ‘자녀교육’편 후속으로 기사에 공감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대치동 고액 과액 강사의 고백과 시골 고교 교사의 성토를 인터뷰로 내보냈다. 기사를 읽은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싱글맘 아이 교육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연락했다.
궁극적인 목적은 빈부격차의 간극을 좁히고 사회제도적인 변화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두 달간 진행되는 빈부 리포트는 주거, 노동, 재산관리, 건강, 여가 등 삶의 일부분에서 다양한 사례를 전할 예정이다. 대안이 제시될 결론은 아직 ‘열려 있는’ 상태다. 유 기자는 “발품을 팔아 현장의 ‘살아 있는’ 기사를 전할 것”이라며 “빈자나 부자 모두 서로를 잘 모른다. 사회 구성원들이 빈부격차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 기자도 “취재를 할수록 두 개의 나라가 있다고 느낄 정도로 격차가 심각했다”며 “불평등이 커질수록 경제성장이나 사회통합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번 기획으로 구조적 변화가 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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