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한 펜만 22자루…펜과 사랑에 빠지다

[시선집중 이 사람]펜 수집 이색취미 경인일보 김범수 기자

세월호 침몰사고를 취재하기 위해 지난 4월 진도로 내려갔을 때 일이었다.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대화 도중 자신의 보물을(?) 하수구에 빠트렸다. 무려 4만5000원 상당의 물건이었다. 깜짝 놀란 선배는 급히 무거운 하수구 뚜껑을 번쩍 들어 물건을 찾았다. 하수구를 뒤져 물건을 움켜쥔 선배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펜이었다.


김범수 경인일보 기자의 취미는 펜 수집이다. 21살 때 세일러 리쿠르트라는 1만7000원짜리 일본산 만년필을 손에 쥐면서 그는 펜과 사랑에 빠질 준비를 마쳤다. 당시 신춘문예를 준비하던 그는 글은 손으로 직접 원고지에 써야 한다는 생각에 손에 맞는 펜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다른 좋은 펜들에도 관심이 갔고 자연스레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현재 갖고 있는 펜은 22자루. 가격은 만 원 이하부터 몇 십 만원까지 그 범위가 다양하다. 그 중 가장 비싼 모델은 비스콘티라는 이탈리아 브랜드의 ‘오페라 피오르드’ 만년필이다. 36만원이라는 가격답게 필기감이 좋아 많이 사용하는 펜이라고 한다. 가장 싼 펜은 8000원 짜리 중국산 만년필. 한국에서 팔지 않아 중국에 간 지인한테 부탁까지 해 산 펜이지만 필기감이 좋지 않아 안 쓰고 있다. 


▲그는 단테의 신곡을 표현한 만년필을 가장 갖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수집한 펜을 늘어놓고 즐거워하는 김범수 기자.

여기까지에서 알 수 있듯 그는 펜을 단순히 수집하지 않는다. 산 펜을 되도록 사용하려고 한다. 그래서 아주 비싼 펜은 금전적인 이유도 있지만 잘 손이 가지 않는다고 한다. 아까워서 못 쓰게 될 것 같단다. 그의 가방에는 펜 파우치 2개가 항상 있다. 3구 짜리 하나, 2구 짜리 하나. 총 5개의 펜을 갖고 다니며 취재할 때 이들을 적극 활용한다. 예를 들어 ‘펠리칸-루비레드’는 연성기사를 쓸 때, ‘오페라 피오르드’는 강성기사를 쓸 때 사용하는 식이다. “루비레드는 만년필이라 편히 앉아 취재할 수 있는 경우에 많이 사용해요. 연성기사의 경우 주로 자리를 마련하고 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루비레드의 화려한 모습에 취재원과 말문이 트이기도 하죠. 피오르드의 경우 북부 쪽 빙하 느낌이라 강성기사와 어울리지 않나 하는 생각에 쓰고 있습니다.” 


그는 펜을 볼 때 외관과 이미지를 중히 여긴다. 갖고 다니는 5자루의 펜들도 모두 디자인이 예쁜 펜들이다. 반 고흐의 유채화 화풍이 담긴 디스콘티의 ‘반 고흐’ 모델, 루비레드와 쌍둥이처럼 보이는 ‘그린 마블’ 등이 항상 그와 함께 한다. 가장 갖고 싶은 펜을 물어보는 질문에도 주저하지 않고 단테의 신곡을 표현한 만년필을 꼽았다. 오로라사에서 나온 이 펜은 가격이 너무 높고 한정판이라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디자인이 탁월해 갖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단다. 


펜을 수집하면 금전관리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펜 구입의 철학이 있다고 했다. ‘한 달에 딱 한 개만 사자’는 것이다. ‘문방사우’라는 네이버 카페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매장을 방문하며 사고 싶은 펜을 고르고 골랐다가 사는 식이다. 그는 돈을 아끼기 위해 일 외에는 술도 잘 안 마신다고 했다. “그래도 펜을 하도 많이 사니 부모님이 싫어하세요. 한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니니까요.” 


마지막으로 아직 미혼인 그에게 미래의 아내가 펜 수집을 싫어하면 어떡할 거냐는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아내가 펜을 좋아하도록 잘 어울리는 펜들을 선물해 줄 거예요. 계속 선물을 받고 쓰다 보면 아내도 분명 펜을 좋아할 겁니다.” 그에게 펜 수집의 장애물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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